영화가 무엇을 모방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무엇을 모방하지 않는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김초희 감독의 '우라까이 하루키'(2022)는 이러한 자기참조적 모순 속에서 탄생한, 메타영화의 가장 유쾌하고도 냉소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1986년 홍콩에서 2022년 목포로 이어지는 시공간적 평행이동은 단순한 로맨스 서사의 틀을 벗어나 창작과 모방의 존재론적 질문을 던진다. 영화감독 만옥(임선우)은 '우라까이'—좋은 영화의 장면을 몰래 베끼는 것—에 대한 유혹과 두려움 사이에서 여명(고경표)을 만난다. 이는 진가신의 '첨밀밀'(1996)의 구조적 오마주이면서 동시에 그 오마주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성찰이다.
홍콩영화 황금기의 낭만성과 현대 한국 독립영화의 현실이 교차하며, 과거의 영화적 이상향과 현재의 창작 딜레마가 중첩된다. 여기서 '평행'이란 단순한 시간적 분기가 아니라, 원본과 복사본이 동시에 존재하는 창작의 패러독스를 의미하리라.
김초희 감독은 '첨밀밀'의 시각적 요소들—레트로한 의상과 헤어스타일, 설거지 신, 단추키스 신, 자전거 신—을 '대놓고' 차용한다. 하지만 이는 무성의한 모방이 아닌, 모방 행위 자체를 가시화하는 전략이다.
1986년 홍콩의 네온사인적 화려함과 2022년 목포의 소박한 일상성이 대비되며, 이는 과거 홍콩영화의 미화된 기억과 현재의 창작 현실 사이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영화 속 소품들은 모두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자전거는 '첨밀밀'의 상징적 오브제이면서 동시에 그 상징성을 의식적으로 재맥락화하는 장치다. 단추는 연결과 분리의 메타포이면서, 원작과의 연결고리를 끊는 행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왕가위 스타일'의 클로즈업과 불안정한 프레이밍을 차용하되, 그 스타일 자체를 패러디하는 이중적 시선을 유지한다. 카메라는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가면서도 동시에 그 감정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거리두기를 실행한다.
제목의 '우라까이 하루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실제 하루키의 작품과는 무관하다. 이는 브랜드명으로서의 '하루키'와 작품으로서의 하루키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언어유희다. '우라까이를 하다가 진실한 하루의 키를 깨닫는다'는 이중적 의미는 포스트모던 창작론의 핵심—원작성의 불가능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해야 할 진정성—을 압축한다.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 갖는 독특함의 상실과 복원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만옥의 고민은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의 소멸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다.
보드리야르의 개념을 빌려 읽자면, '원본 없는 복사본들의 세계'에서 진정성을 찾는 것의 불가능성과 필요성을 동시에 제시하는 것이다.
만옥의 목포 도착은 '첨밀밀'의 홍콩 도착 장면을 반향한다. 하지만 홍콩의 현대적 화려함 대신 목포의 소박함이 제시되며, 이는 현대 독립영화가 처한 현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기차역의 플랫폼, 낡은 간판들, 한적한 거리—이 모든 것이 '첨밀밀'의 그것과 대비되면서 향수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부각시킨다.
여명과의 우연한 만남은 전형적인 로맨스 영화의 클리셰를 따르면서도, 그 클리셰에 대한 의식적 거리두기를 보인다. 대화의 내용 자체가 영화 만들기에 대한 메타적 성찰로 채워져 있어, 로맨스와 창작론이 겹쳐진다.
'첨밀밀'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인 자전거 신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이를 하나의 '연기'로 제시한다. 인물들이 자신들이 영화 속 장면을 재연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듯한 연기를 통해 메타적 층위를 더한다.
'우라까이 하루키'가 2022년에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시기는 K-콘텐츠의 글로벌한 성공과 함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강박이 절정에 달한 시점이기도 하다. 김초희 감독은 이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오히려 '모방'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창작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만옥의 고민—"사람들이 실망하는 작품을 만들까 봐 걱정"—은 현대 창작자들이 겪는 보편적 불안이다. 여기서 여명의 답변—"내가 나한테 하는 감탄이 훨씬 더 귀한 것"—은 외부적 검증에서 내적 진정성으로의 전환을 제시한다.
영화가 자신의 제작과정과 창작 윤리를 다루는 것은 단순한 자기반영을 넘어서, 현대 영화산업의 구조적 문제들—상업성과 작품성, 오리지널리티와 대중성 사이의 딜레마—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김초희 감독이 '우라까이'를 통해 오히려 가장 '김초희다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T.S. 엘리엇이 말한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위대한 시인은 훔친다"는 명제의 현대적 실현이다.
김초희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인 '비틈'이 여기서는 장르적 비틈이 아닌 메타적 비틈으로 발현된다. 진부한 로맨스 서사를 비틀어 창작론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베끼기'를 비판하면서, 실제로는 '베끼기'를 통해 독창적 작품을 만드는 모순적 상황. 이는 포스트모던 예술의 전형적 전략이자, 현대 창작 환경에 대한 냉소적 통찰이다.
누군가에게는 맞고 누군가에게는 틀리다. 다만 김초희는 그 '식상함' 자체를 소재로 삼음으로써 한 발 더 나아간다. 메타적 접근의 식상함을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피할 수 없는 현대 창작자의 딜레마를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정한 성취다.
'우라까이 하루키'는 표면적으로는 가벼운 로맨스 코미디지만, 그 안에는 현대 창작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이 압축되어 있다. 김초희 감독은 '베끼기'를 통해 '베끼지 않기'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구해야 할 진정성의 의미를 재정의한다.
이 영화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오리지널리티'라는 환상과 '진정성'이라는 강박 사이에서 헤매고 있기 때문에 다름 아니다. 김초희는 그 헤맴 자체를 포용하고 즐기라고 제안한다. 마치 여명이 만옥에게 말했듯이, "내가 나한테 하는 감탄"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감탄은, 역설적이게도, 타인의 것을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이것이 바로 '우라까이 하루키'의 아름답고도 씁쓸한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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