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 송의 2025년작 <머티리얼리스트>는 결혼시장 메커니즘과 데이팅 앱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현 시대의 사랑을 해부한다. 다코타 존슨이 연기하는 루시는 뉴욕 상류층 결혼정보회사 'Adore'의 커플 매니저로, "당신은 인생의 사랑과 결혼할 것입니다"라는 달콤한 거짓말을 파는 현대판 감정 중개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소름돋게 정확한 건, 사랑마저도 포트폴리오 최적화의 대상이 된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본다는 점이다.
영화는 원시인 남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언어도 없던 시절, 남성이 여성에게 접근하는 방식조차 이미 물질적 증명—사냥 실력, 체격, 생존 능력—에 기반한다는 시니컬한 전제를 깔고 들어간다. 이는 루소의 자연 상태론에 대한 신랄한 반박이다. 순수한 사랑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진화심리학적 냉소주의 선언이다.
이 시퀀스의 따뜻한 세피아 톤은 노스탤지어의 함정을 시각화한다. 우리는 과거를 더 순수했던 시절로 미화하지만, 실제로는 지금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었다는 것. 셀린 송은 첫 5분 만에 관객의 로맨틱한 환상을 조각내려 한다.
'Adore' 사무실은 월스트리트 트레이딩 룸을 연상시킨다. 루시와 동료들이 고객들을 매칭시키는 과정은 주식 거래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그는 당신의 많은 조건을 충족시켰고, 당신도 그의 많은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라는 대사는 감정을 수치화하는 현대 연애의 잔혹한 현실을 압축한다.
특히 고객들이 요구하는 조건들—"흑인은 싫어요", "뚱뚱한 사람 싫어요", "연봉 2억 이상"—을 나열하는 장면은 인간의 상품화를 직접적으로 폭로한다. 이는 칼 마르크스가 분석한 상품 페티시즘의 연애판이다. 인간의 사용가치(사랑받을 만한 인격)는 교환가치(결혼 시장에서의 가격)로 완전히 대체된다.
페드로 파스칼의 해리는 업계 용어로 '유니콘'—현실에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조건을 갖춘 남성이다. 1200만 달러짜리 펜트하우스, 사모펀드 매니저, 키 크고 잘생긴 외모, 그리고 도덕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인격까지. 하지만 이 완벽함이야말로 영화의 가장 영악한 함정이다.
해리의 아파트는 미니멀리스트 미학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그 무균실 같은 완벽함이 오히려 인간적 온기의 부재를 드러낸다. 모든 것이 매거진 화보처럼 정렬되어 있고, 살아있는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찬 베일이 꾸민 공간처럼,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HAL의 공간처럼 비인간적 완벽성을 암시한다.
페드로 파스칼의 연기는 계산된 매력과 진정성 사이의 미묘한 경계를 걷는다. 그의 모든 대사와 제스처는 완벽하지만, 바로 그 완벽함 때문에 조금씩 섬뜩하다. 마치 AI가 학습한 이상적 남성상을 구현한 것 같은 '언캐니 밸리' 효과를 만들어낸다.
루시와 존(크리스 에반스)이 타임스퀘어에서 주차비 때문에 싸우다 헤어진 플래시백은 이 영화의 감정적 핵심이다. 겨우 25 달러 때문에 사랑이 무너졌다는 비극적 아이러니는, 현대 연애에서 경제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보여준다.
이 장면의 시각적 연출은 네온사인의 화려함과 감정적 절망 사이의 대조를 강조한다. 뉴욕의 자본주의적 화려함이 배경으로 깔린 가운데, 두 사람의 관계는 몇 달러라는 소액 때문에 산산조각난다.
크리스 에반스의 존은 전형적인 실패한 아티스트지만, 그 진부함을 의도적으로 활용한다. 37세까지도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고집은 순수한 열정인 동시에 현실 도피다. 그가 웨이터로 일하며 3명이 함께 사는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모습은 예술가의 로맨틱한 가난이 아니라 그냥 가난이라는 걸 냉정하게 보여준다.
셀린 송은 공간을 통해 계급을 이야기한다. 해리의 펜트하우스는 수직적 우월감을 시각화한다—높은 천장, 거대한 창문, 도시를 내려다보는 전망. 반면 존의 아파트는 수평적 답답함을 강조한다—낮은 천장, 작은 방, 룸메이트들과의 강제적 친밀감.
이런 점에서 특히 엘리베이터 시퀀스들은 인상적이다. 해리의 건물 엘리베이터는 조용하고 빠르게 올라가지만, 존의 건물에는 엘리베이터조차 없다. 루시가 계단을 올라가며 숨이 차는 장면은 사회적 상승의 어려움을 신체적으로 체험하게 만든다.
해리와 함께 있을 때의 조명은 차갑고 균일하다. LED의 완벽한 백색광은 모든 것을 명료하게 비추지만 그림자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감정의 복잡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합리적 관계를 상징한다.
반면 존과의 장면들은 따뜻하고 불균일한 조명으로 촬영된다. 백열전구의 주황빛 온기는 노스탤지어와 친밀감을 자아내지만, 동시에 불안정함도 암시한다. 전구는 깜빡이고, 그림자가 춤추는 공간에서 감정은 예측불가능해진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음악을 의도적으로 피한다. 대신 무드 있는 인디 록과 앰비언트 사운드가 깔리면서 성찰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는 장르적 기대를 교묘하게 배신하는 전략이다.
특히 해리의 아파트에서 나오는 도시의 소음—자동차, 공사 소리, 헬리콥터—은 자본주의 도시의 끊임없는 움직임을 나타낸다. 반면 존과 함께 있을 때는 더 조용하고 친밀한 사운드스케이프가 펼쳐진다. 웃음소리, 대화, 살아있는 소음들이 인간적 온기를 전달한다.
다코타 존슨의 의상 변화는 내적 갈등을 외적으로 시각화한다. 직장에서는 완벽한 프로페셔널 룩—정장, 하이힐, 통제된 헤어스타일. 해리와 함께 있을 때는 세련된 캐주얼—비싼 브랜드지만 계산된 자연스러움. 존과 함께 있을 때만 진짜 편안한 옷—청바지, 스니커즈, 흐트러진 머리.
특히 속옷 장면은 대조적이다. 해리와의 베드신에서는 완벽한 란제리를 착용하지만, 존과의 플래시백에서는 평범한 속옷을 입고 있다. 전자는 퍼포먼스로서의 섹슈얼리티를, 후자는 일상으로서의 친밀감을 나타낸다.
<머티리얼리스트>는 틴더/범블 시대의 연애관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루시의 일은 본질적으로 고급 데이팅 앱과 같다—프로필 최적화, 매칭 알고리즘, 수치화된 매력도. 하지만 여기서 교묘한 점은,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고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알고리즘의 효율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해리는 실제로 객관적 지표상 완벽한 파트너다. 문제는 사랑이 최적화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다. 루시가 해리와 함께 있으면서도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사랑에는 수치화 불가능한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결혼식 장면들은 메타적 장치로 기능한다. 루시는 자신이 매칭한 커플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며 타인의 행복을 관찰한다. 하지만 그 행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깔려 있다.
특히 루시와 존이 초대받지 않은 결혼식에 참석하는 장면은 현대인의 소외감을 압축한다. SNS에서 타인의 큐레이션된 행복을 구경하는 것과 같은 관음증적 고독감이다. 결혼식이라는 행복의 스펙터클을 훔쳐보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행복에 대한 불안을 드러낸다.
존이 출연하는 소극장 연극과 해리의 사모펀드 업무는 예술과 자본의 대립을 상징한다. 존의 연극은 100명 남짓한 관객을 상대로 하지만 진정한 감동을 추구한다. 해리의 펀드는 수백만 달러를 움직이지만 추상적 숫자의 게임일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예술의 순수성을 무조건 옹호하지 않는다. 존의 연극이 자기만족적일 수도 있고, 해리의 일이 사회적으로 더 유용할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인정한다. 이런 도덕적 중립성이 셀린 송 영화의 성숙함이다.
루시의 최종 선택은 단순한 감정의 승리가 아니다. 그녀는 해리를 선택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존과 해피엔딩을 보장받지도 않는다. 대신 영화는 선택 이후의 현실—경제적 불안정,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정직하게 제시한다.
이는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 결말을 거부하는 유럽 아트하우스 방식이다. 사랑의 선택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잔혹한 현실주의다. 루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푸코의 신자유주의 주체성 이론을 빌리면, 루시는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전형이다. 그녀는 자신을 인적 자본으로 인식하고,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타인의 연애 자본을 관리하는 업무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루시는 이런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에 균열을 낸다. 존을 선택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이지만, 그 비합리성이야말로 인간의 주체성을 증명한다. 이는 아렌트가 말한 "세계에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과 연결된다.
<머티리얼리스트>가 2025년 현재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AI와 알고리즘이 연애 영역까지 침투했기 때문이다. ChatGPT가 데이팅 앱 프로필을 작성해주고, AI가 최적의 파트너를 추천하는 시대에, 인간의 직관적 선택은 더욱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특히 요즘 세대의 연애관—MBTI 궁합, 조건부 사랑, 갓생 문화—은 영화 속 상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연애도 자기계발의 일환이 되고, 파트너는 나의 스펙을 보완해주는 존재가 된다. <머티리얼리스트>는 이런 현실을 20년 앞서 예견한 셈이다.
물론 신랄한 비판도 가능하다. 결국 루시는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인물이다. 1200만 달러 펜트하우스 남자와 가난한 예술가 사이에서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것 자체가 결혼시장에서의 상층의 사치다. 진짜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루시의 특권적 지위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 특권 속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찾기 어렵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경제적 풍요가 감정적 빈곤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현대적 역설을 다룬다.
게다가 루시의 고민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 그녀가 갈등하는 이유는 개인적 우유부단함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딜레마 때문이다. 사랑과 경제적 안정을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다.
셀린 송은 103분 동안 현대 연애의 모순을 해부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왜 우리는 이런 선택을 강요당해야 하는가? 사랑이 포트폴리오 다각화의 대상이 된 세상에서, 진정한 반항은 비합리적 선택일지도 모른다. 루시가 마지막에 보여주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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