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생크스(Michael Shanks)의 2025년 장편 데뷔작 <투게더>는 신체적 공포(Body Horror)와 로맨틱 코미디를 결합한 전례 없는 실험이다. 데이브 프랑코와 앨리슨 브리라는 현실 부부가 픽션 속 커플 팀과 밀리를 연기하며, 상호의존적 관계의 공포를 문자 그대로 피부에 새겨넣는다.
영화는 두 마리 개가 신비한 동굴의 물을 마신 후 두 머리를 가진 괴물로 변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는 존 카펜터의 <괴물>을 연상시키는 바이오 호러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사랑하는 존재들 간의 경계 해체라는 더 복잡한 철학적 문제를 제기한다. 개들의 변형은 순수한 본능적 결합을 보여주는 반면, 인간의 경우는 의식적 선택과 무의식적 욕망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이 프롤로그적 장치는 관객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고를 주면서도, 자연계에서의 융합과 문명 속 인간의 융합이 본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팀은 30대 중반의 실패한 뮤지션이고, 밀리는 안정적인 교사 직업을 가진 현실주의자다. 이는 수많은 인디 영화에서 봤던 설정이지만, 생크스는 이 클리셰를 초자연적 공포와 결합시켜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밀리가 시골 학교 일자리를 얻고 팀이 마지못해 따라가는 상황은 젠더 역할의 현대적 역전상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경제적 주도권을 잡던 관계에서, 이제는 여성의 커리어가 관계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 팀의 음악에 대한 집착은 성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피터팬 신드롬의 전형처럼 보인다.
커플이 숲속을 하이킹하다 우연히 발견하는 지하 동굴은 여러 동굴의 은유들 중, 융 심리학의 집단무의식 공간으로도 읽힌다. 동굴은 인류 원시의 주거지이자 자궁의 은유로, 문명 이전의 원초적 결합을 상징한다. 그들이 폭풍을 피해 하룻밤 머무는 상황은 의도하지 않은 통과의례가 된다.
동굴 안의 우물물을 함께 마시는 행위는 어쩌면 성찬의 패러디다. 기독교에서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신과의 결합을 의미한다면, 여기서 저주받은 물을 나누어 마시는 것은 운명적 속박을 의미한다. 이는 사랑의 맹세가 때로는 자유의 포기를 의미한다는 씁쓸한 진실을 드러낸다.
몸의 변화는 미묘하게 시작된다. 처음에는 가끔 서로에게 달라붙는 정도지만, 점차 피부가 녹아들고 팔다리가 서로 안으로 들어가는 괴기스러운 변형으로 발전한다. 이는 크로넨버그의 <플라이>에서 점진적 변형이 주는 지속적 불안감과 유사하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크로넨버그의 변형이 개인의 정체성 상실에 대한 공포였다면, <투게더>의 변형은 관계 속에서의 자아 소실에 대한 공포다. "나"라는 존재가 "우리"에 흡수되는 과정을 문자 그대로 시각화한다.
밀리가 팀의 등을 마사지하다가 그의 등 안으로 손이 들어가는 장면은 친밀함의 극한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몸 속까지 들어가고 싶다는 로맨틱한 욕망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면서 역설적으로 공포가 된다.
이 장면의 조명은 따뜻한 황색으로, 일상적 친밀감을 연출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신체적 침습이다. 사랑과 폭력의 경계가 얼마나 모호한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미장센이다.
부부가 샤워를 하며 서로를 떼어내려 애쓰는 장면은 정화 의례의 실패를 상징한다. 물은 전통적으로 정화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분리 불가능한 결합을 더욱 명확히 드러낼 뿐이다.
타일의 기하학적 패턴과 흰색 욕실의 미니멀한 공간은 병원이나 실험실을 연상시키며, 이들의 상황이 치료나 해결 불가능한 상태임을 시사한다. 스팀으로 흐려지는 거울은 정체성의 모호함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데이먼 헤리먼이 연기하는 이웃 제이미는 사회적 규범의 대변자이자 관계에 대한 외부 시선을 상징한다. 그가 지역 컬트와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은 사회가 비정상적 관계를 배척하는 메커니즘을 은유한다.
제이미가 부부의 상황을 목격하고 공격하는 장면들은 사회적 낙인과 정상성 강요에 대한 직접적 비판이다. 톱으로 그들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외부의 강제적 개입이 오히려 더 큰 상처만 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팀이 어머니의 시체 옆에 웃으며 앉아있는 악몽은 남성의 관계 불안을 오이디푸스적 차원에서 다룬다. 어머니는 죽은 상태이지만 체셔 고양이처럼 웃고 있으며, 이는 과거 관계의 트라우마가 현재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시각화한다.
이 장면은 데이빗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괴기스러운 얼굴들이 등장하는 방식과 유사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관계적 트라우마에 집중한다.
팔이 완전히 융합된 상태에서 프로포즈하는 장면은 로맨틱 코미디의 클라이맥스를 뒤틀어놓는다. "함께 있고 싶다"는 말이 문자 그대로 실현된 상황에서, 결혼이라는 제도는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스파이스 걸즈의 "Two Become One"이 배경음악으로 깔리면서 90년대 팝 문화의 순진한 로맨스와 현재의 기괴한 현실 사이의 날카로운 대조를 만들어낸다. 이는 그간 많은 작품에서 보였던 '노스탤지어의 복잡성'—과거의 순수함이 현재의 복잡함과 만나는 지점—을 탐구한다.
영화 말미에 밀리의 부모가 융합된 부부를 만나는 장면은 코미디와 호러의 균형점이다. 완전히 융합되어 중성적 존재가 된 그들을 "아이"라고 부르는 부모의 반응은 사회가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방식을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이 장면은 황당하면서도 히스테리컬하다는 감상을 주지만, 동시에 가족과 사회의 수용이 얼마나 조건적이고 표면적인지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데이브 프랑코와 앨리슨 브리라는 현실 부부가 상호의존적 관계의 공포를 연기한다는 설정은 메타텍스트적 차원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그들의 실제 관계와 영화 속 관계 사이에서 경계를 모호하게 경험한다.
버튼과 테일러, 뉴먼과 우드워드와 같은 전설적 부부 배우들과의 비교는 현실과 허구의 융합이라는 영화의 주제와 완벽하게 조응한다. 실제 결혼 16년차 감독의 경험이 투영된 이 작품은 자전적 호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융 심리학의 개체화(Individuation) 과정과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자아의 경계 해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디서 끝나고 너는 어디서 시작하는가?"라는 관계의 핵심적 딜레마를 신체적 차원에서 탐구한다.
바타유의 에로티시즘 이론—죽음과 결합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극한 경험—과도 연결된다. 두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개별 존재로서의 죽음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존재로의 탄생이기도 하다.
소셜미디어와 원거리 관계가 일반화된 시대에, <투게더>는 극단적 물리적 친밀감을 제시한다. 줌 피로감과 터치 스타베이션을 경험한 포스트 팬데믹 관객들에게, 물리적 융합의 공포와 욕망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경험한 세대에게 "물리적 거리두기의 불가능성"은 새로운 차원의 클로스트로포비아를 제공한다. 디지털 관계의 한계를 경험한 현대인들에게 완전한 물리적 결합은 공포인 동시에 판타지다.
비판적 시각에서 보면, 이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의 사치스러운 관계 고민일 수 있다. 시골집으로 이주할 수 있는 경제력, 커리어에 대한 선택권을 가진 이들의 "관계의 질"에 대한 고민은 진짜 생존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에게는 부차적으로 보일 수 있다.
또한 현실 부부의 캐스팅이 진정한 연기적 도전인지 마케팅 기믹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될 수 있다. 실제 관계의 안정성이 영화 속 관계의 위기감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영화는 계급적 특수성을 보편적 관계 경험으로 성공적으로 승화시킨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되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욕구 사이의 갈등은 모든 관계의 기본 딜레마다.
신체적 융합이라는 극단적 은유를 통해 일상적 관계 문제를 새로운 차원에서 조명한다는 점에서, 이는 SF나 호러 장르의 전통적 기능—낯선 상황을 통한 친숙한 문제의 재발견—을 충실히 수행한다.
마이클 생크스는 106분 동안 사랑의 역설을 완벽하게 해부해낸다. 완전한 결합에 대한 욕망이 완전한 자유의 포기를 의미한다는 잔혹한 진실을, 웃음과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기괴한 스펙터클로 포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Two Become One"이 울려 퍼질 때, 우리는 깨닫는다. 하나가 되는 것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변질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마저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그것 역시 사랑의 한 형태일지 모른다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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