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마이 신지(相米慎二)의 '이사(お引越し)'(1993)는 표면적으로는 가족의 해체 위기 앞에서 고군분투하는 11세 소녀 렌코(영화에서는 '렌'이라는 애칭으로 불린다)의 성장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사"라는 물리적 행위를 존재론적 이행의 은유로 치환시킨 철학적 통과의례를 그린 영화라 할 수 있다. 제목의 '이사'가 품고 있는 이중성—공간의 물리적 이동과 정신적 성장의 은유—은 소마이 신지가 1990년대 이후 도달한 성숙한 영화 언어의 정수를 보여준다.
아버지 '겐이치'(中井貴一)와 어머니 '나즈나'(桜田淳子, 사쿠라다 준코)의 별거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가 아니라 전후 일본사회의 가족 제도 변화를 미시적으로 포착한 사회학적 텍스트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부부의 별거 사유를 의도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항상 렌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지각"하게 만드는 전략으로, 성인 세계의 불가해함을 아이의 시선으로 체험하게 한다.
렌은 빅터 터너가 말한 "경계적 존재(liminal being)"로 설정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아이와 어른 사이, 과거와 미래 사이,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부유하는 그녀의 상태는 근대 일본 사회 자체가 겪고 있는 정체성 혼란의 축소판이다.
소마이 신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삼각형 테이블은 "가족의 미묘한 거리감을 표현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기하학적 완결성을 가진 삼각형이 불안정한 가족 관계를 담는 용기가 된다는 역설은, 형식과 내용의 긴장 관계를 가시화한다.
렌이 아버지에게 전달하려던 기린 인형이 "슬로우 모션으로 계단을 낙하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의 핵심 메타포로 보인다. 이 순간에 흐르는 오르골 음악은 클라이맥스에서 재등장하며, "아이와 어른의 어긋남"이라는 주제를 청각적으로 각인시킨다. 왜 하필 기린인가? 기린이라는 동물 선택도 의미심장하다—아프리카의 초원에 사는 이 이국적 동물은 일본의 도시적 현실과는 거리가 먼 순수성을 암시한다.
영화에서 반복되는 오르골 선율은 "렌코가 감지하는 어른과의 차이"를 음향적으로 구현한다. 이 선율은 유년기의 순수함과 성장의 고통을 동시에 상징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시간의 불가역성을 체감하게 만든다.
이노우에 요-스이(井上 陽水)의 "동쪽으로 서쪽으로(東へ西へ)"라는 소마이 신지가 선택한 이 곡은 단순한 삽입곡이 아니라 영화의 주제의식을 요약한 음악적 은유다. 동서남북으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가사는 렌코의 정신적 여행과 대응되며, 이는 물리적 이사를 초월한 실존적 이동의 의미를 강화한다.
물은 렌코의 정서적 충격과 재생을 상징한다. 부모와의 갈등, 혼란과 고립의 순간에 물은 그녀를 감싸며, 순수성을 보존하는 기능을 한다. 예컨대, 렌코가 신비로운 노인과 만나는 장면에서 "물뿌리기"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종교적 정화 의례의 변주다. 노인이 죽은 아들에 대해 "더 위, 훨씬 더 위"라고 말하며 하늘을 가리키는 순간, 영화는 일상에서 신성으로의 이행을 암시한다. 또한 가족 축제에서 등장하는 물의 제의적 사용은 세대간 갈등과 화해를 잉태한다.
불은 욕망과 소멸, 변화에 대한 고통을 통과하는 상징으로 기능한다. 밤의 촛불, 태양 아래의 행진 등은 인물이 내적 성장의 고통을 겪는 순간이나, 가족 재구성의 희망을 암시한다. 불은 물과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강화한다. 눈물(즉, 물) 뒤에 다가오는 빛(즉, 불)은 파괴와 치유가 동시적임을 보여준다.
이들은 일본 사찰의 ‘수불(水火) 제일’ 사상이나, 서양 철학의 헤겔적 변증법과 평행한다. 헤겔은 “정반합” 구조에서 각 성질이 충돌(negation)과 조화(sublation)를 거쳐 새로운 존재로 이행함을 설명하며, 영화는 물과 불의 반복을 통해 가족의 해체와 재생이라는 주제를 입체적으로 환유한다.
렌코의 ‘우루시바’(漆葉/うるしば)라는 독특한 성씨에도 상징성이 내재한다. ‘우루시’(漆)는 일본어로 옻나무, 즉 ‘옻칠’, ‘도장’, ‘보호’의 의미를 품고 있고, 예로부터 일본 전통공예와 신사 의례에 사용된 원료다. ‘바’(葉)는 ‘잎’으로 자연성·순환성을 내포한다.
우루시(漆)는 상처를 덧바르고 환부를 치유하는 고유한 성질이 있다. 가족 해체와 내적 충돌을 겪는 렌코가, 옻칠처럼 상처 위에 새로운 층을 덧묻혀 성장하게 되는 것을 연상시킨다. 이것은 성장을 “목가적 치유”로 미화하지 않고, 고통의 반복 속에서(옻을 칠하고 말린 뒤 다시 칠하는 과정) 주체가 생성된다는 일본적 존재론의 성찰이다.
잎(葉)은 자연의 소생, 시간의 흐름, 유기적 관계망 등, 렌코가 가족이라는 더 큰 '나무'를 떠나 자신의 '잎'을 찾아가는 여정의 은유이리라.
따라서 우루시바라는 성씨는 곧 “상처받아 치유하며 성장하는 존재—옻을 덧바른 잎처럼 변화 속에 자신을 보존하는 법을 찾아가는 아이”의 상징이다. 이 성씨가 단순한 가족 서사를 넘어, 자연-공예-종교-시간의 다층적 패러다임을 포괄함을 보여준다.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렌코가 경험하는 "농경제(農耕-)"와 "선행제(先行-, 미리 지내는 제사)"는 일본 고대 종교의 핵심 의례들이다. 특히 "야마토타케루 전설의 일부를 재현하는 선행제"는 일본 건국 신화와 개인의 성장 서사를 연결시키는 대담한 시도다. 오키나와에서 가져온 배가 비와호에 떠 있는 설정은 남북 일본의 문화적 공존을 함의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벚꽃처럼 덧없이 피고 지는 것들의 애수를 의미하는 이 '덧없음'의 미학은 렌코의 유년기 종료와 겹쳐진다. 그녀가 입은 "하얀 의상"은 죽음과 재생을 동시에 상징하는 일본 전통의 색채 상징학을 따른다.
정적인 프레이밍 속에서 벌어지는 폭풍 같은 현실 변화는 소마이 신지 특유의 "정적인 역동"을 보여준다.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인물들의 내적 동요가 부각된다. 삼각형 테이블 위의 음식들은 가족의 '최후의 만찬'을 연상시키는 종교적 도상으로 기능한다.
렌코가 친구들로부터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는 장면들은 서스펜스 기법을 차용한다. 하지만 범죄 영화의 긴장감이 아닌, 사회적 배제의 고통을 시각화하는 데 사용된다. 롱숏으로 촬영된 운동장 장면에서 혼자 서 있는 렌코의 모습은 에드워드 호퍼의 회화를 연상시킨다.
렌코가 캐시카드를 훔쳐 여행을 예약하는 장면은 범죄 영화의 문법을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해체한다. 아이의 순수한 의도가 어른의 윤리적 기준으로는 "죄"가 되는 아이러니를 부각시킨다.
삼각형을 이루고 앉은 가족의 구도는 오프닝의 식탁 장면과 대응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테이블이 아닌 소파에 앉아 있어, 가정적 친밀성에서 공적 소외감으로의 변화를 공간적으로 구현한다.
"당초 각본에는 없었던" 이 시퀀스는 소마이 신지의 즉흥적 천재성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롱테이크로 촬영된 트래킹 숏은 "세상이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명시"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해체한다.
특히 비와호에서의 에필로그는 장자의 '오상아(吾喪我, 이전의 스스로를 장례보냄)'를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자아로 '건너갈' 통과의례를 렌은 스스로를, 혹은 '건너갈 혹은 건너온' 제4의 벽 너머의 관객을 축하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어른이 될게"라던 렌은 수차례의 새해맞이의 의례적 인사((あけまして) "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를 거듭하여 나이를 먹듯 스스로 제례를 지낸다.
13세의 타바타 토모코(田畑智子)가 보여준 연기는 기법적 완성도를 넘어서는 존재론적 차원에 도달한다. 감독이 그녀에게 "타코(문어)", "애송이", "아가씨" 등으로 불렀다는 증언은 감독이 배우의 자존심을 의도적으로 건드려 진정한 감정을 끌어내려 했음을 시사한다. "네 조대교에서 촬영이 끝나면 던져버리겠다"는 감독의 말은 배우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감독의 연기 연출법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제작된 1993년은 일본 버블경제 붕괴 직후로, 전통적 가족 제도가 급격히 변화하던 시기였다. 영화는 이러한 핵가족 해체현상의 전조를 한 가정의 미시적 경험으로 포착한다.
나즈나(桜田淳子)가 별거 후 새로운 "헌법"들을 만들며 새로운 사회계약을 가족 안에서 만드는 행위는 여성이 가정의 수동적 희생자에서 능동적 주체로 변화하려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다.
렌코가 스스로 여행을 기획하고 가족을 구원하려 시도하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 아동이 더 이상 순종적 존재가 아닌 독립적 주체로 인식되기 시작했음 또한 암시한다.
감독 스스로 밝혔듯, 이 작품은 "자신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죽임을 적절히 성공시켜" 만든 영화다. 이는 1980년대의 과격한 자신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더욱 성숙하고 절제된 연출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관서 지역 방송사들의 후원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영화 환경에 없던 사람들이 만든 다른 공기" 속에서 탄생했다. 이는 상업영화 제작 시스템 바깥에서 오는 창작의 자유로움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촬영감독 쿠리타 토요미치(栗田 豊通)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코닥 5293 필름을 사용해 "입자를 최대한 억제"했다고 한다. 이는 1990년대 초 일본 영화계의 기술적 혁신을 보여주는 동시에, 소마이 신지가 추구한 "자연스러운 현실감"의 물질적 기반을 제공했다.
이는 소마이 신지의 정교한 연출 전략을 오독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렌의 환상 시퀀스는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실 초극의 시도다. 렌코가 경험하는 종교적 엑스터시는 일본 전통 문화의 집단 무의식과 연결되며, 개인의 성장을 민족사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대담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이 역시 의도된 연출 전략일테다. 성인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그리는 것은 아이의 시각에서 본 현실의 정확한 재현이다. 아버지역의 나카이 키이치(中井貴一)와 어머니역의 사쿠라다 준코(桜田淳子)의 절제된 연기는 아이에게는 불투명하게 보이는 어른의 내면을 적절히 구현한다.
소마이 신지는 전통 회귀가 아닌 전통의 창조적 재해석을 시도한다. 렌코가 마지막에 선언하는 "미래로!"는 과거로의 퇴행이 아닌 전진 의지의 표명이다. 전통 의례를 통과한 후 얻는 것은 고정된 정체성이 아닌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이사(お引越し)'는 물리적 공간의 이동을 정신적 성장의 은유로 승화시킨 소마이 신지의 철학적 성취다. 렌코의 여정은 단순한 성장담을 넘어서, 현대인이 겪는 실존적 위기와 그 극복 가능성을 탐구하는 현상학적 실험일 것이다.
가족 해체와 개인화가 글로벌한 현상이 된 현재, 팬데믹 이후 더욱 심화된 사회적 고립감 속에서, 렌코의 "미래로!" 선언은 절망을 희망으로 전환시키는 실존적 용기의 어떤 모형을 제시한다.
소마이 신지가 124분 만에 완성한 이 성장의 교향곡은, 어쩌면 우리 모든 사람이 평생에 걸쳐 수행해야 할 "이사"—낡은 자아에서 새로운 자아로의 이행—의 예술적 매뉴얼인지도 모른다. 다만 그 이사의 목적지는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여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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