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현 PD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생존자다' 중 삼풍백화점 참사를 다룬 두 에피소드—'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돈으로 쌓은 탑'—는 단순한 사고 재현을 넘어서 "무너짐의 현상학"과 "생존자의 존재론"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 20초 만에 완전 붕괴된 삼풍백화점의 물리적 시간과 그 이후 30년간 지속되는 심리적 시간의 대조를 통해, 조성현 감독은 "트라우마의 시간적 비가역성"을 영상 언어로 번역한다.
두 에피소드는 사건의 직선적 시간(1995년 6월 29일)과 기억의 순환적 시간(인터뷰 현재)을 교차 편집으로 구성한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그날의 재현"에, '돈으로 쌓은 탑'은 "그 후의 지속"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사건사(事件史)"에서 "생존사(生存史)"로의 관점 전환을 수행한다.
조성현 PD는 의도적으로 "전문가-생존자" 중심의 위계를 거부하고,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유일한 권위"로 설정한다. 건축학자나 재해 전문가의 분석은 최소화하고, 대신 "몸으로 경험한 자들의 언어"가 모든 설명을 대체한다. 이는 발터 벤야민이 말한 "경험의 빈곤" 시대에 대항하는 "진정한 경험담"의 복원 시도다.
현재 아파트가 들어선 옛 삼풍백화점 자리를 정적인 롱숏으로 담는 장면들은 "부재의 기념비" 역할을 한다. 카메라는 이 공간을 "무덤을 바라보듯" 엄숙하게 관찰하며, 일상적 도시풍경 속에 "보이지 않는 상흔"이 존재함을 시각화한다.
붕괴 순간을 재현한 CG 시퀀스는 "과도한 스펙터클"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대신 "건물이 기울어지는 순간의 정적"을 강조함으로써 "20초의 영원성"—시간이 정지된 듯한 파국의 순간—을 구현한다. 이는 클로드 란즈만의 '쇼아'가 홀로코스트를 직접 재현하지 않고도 그 공포를 전달한 방식과 유사하다.
"돈 때문에 너희들 그러지?", 유족이 인용하는 이 한 마디는 "화폐 언어"가 "생명 언어"를 어떻게 잠식하는지 보여주는 핵심 모티프다. 이는 게오르그 지멜의 "화폐철학"—모든 가치가 화폐적 등가물로 환원되는 현대 사회의 병리—을 한국적 맥락에서 구현한 것이다.
"돈으로 목숨을 대신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유족의 이 반문은 수사의문문의 형태를 빌려 "생명의 절대성"을 선언한다. 조성현 PD는 이 질문을 반복과 변주를 통해 전체 에피소드의 "리프레인(refrain)"으로 활용한다.
붕괴 전 며칠 동안 나타난 "10cm 벌어진 천장 균열"을 증언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증언자의 손짓을 극단적 클로즈업으로 포착한다. "10cm"라는 수치가 손가락 사이의 간격으로 체감되는 순간, 추상적 수치는 구체적 공포로 전환된다.
붕괴 직전 "쇼핑하던 사람들의 일상적 소음"이 갑자기 "죽음 같은 고요"로 바뀌는 순간을 사운드 디자인으로 구현한다. 일상의 BGM(백그라운드 뮤직)이 사라지고 오직 "건물의 삐걱거리는 소리"만 남는 "사운드스케이프의 전도"는 관객으로 하여금 "재앙의 전조"를 체험하게 만든다.
실제 붕괴 영상을 극도로 슬로우모션으로 처리하여 "20초"를 "20분"처럼 느끼게 만드는 편집 기법은 베르그송의 "지속(durée)" 개념을 영상으로 번역한 것이다.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의 괴리를 통해 "트라우마적 시간"의 특성—순간이 영원으로 확장되는—을 구현한다.
17일 만에 구조된 생존자의 이야기를 다루는 장면에서, 조성현 PD는 "기적"과 "절망"을 동시에 제시한다. 한 사람의 생존이 곧 다른 수백 명의 죽음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는 "희망의 양면성"을 탐구한다.
가장 씁쓸한 현실 중 하나는 붕괴 직후부터 시작된 약탈 행위다. 구조 작업이 진행되는 가운데, "죽은 자들의 소지품"과 "매장 진열품"을 훔치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재난의 2차 가해"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도덕적 타락을 넘어서 "극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무의식"의 발현이다.
"예외상태(state of exception)"에서 평소의 도덕적 금기가 일시 해제되면서, "어차피 주인이 죽었으니", "어차피 버려질 것들이니"라는 왜곡된 합리화를 통해 약탈을 정당화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리라. 나오미 클라인이 명명한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의 미시적 버전이기도 할 것이다. 거대 자본이 재난을 기회로 삼듯, 개인들도 재난을 **"일확천금의 기회"로 인식하는 동일한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폐허를 뒤지는 서민들"과 "책임을 회피하는 기득권"을 교차하며 대비시킨다. 물리적 약탈(좀도둑)과 구조적 약탈(책임 회피)이 동시에 벌어지는 "이중 약탈 구조"의 폭로다.
"몇 천원짜리 액세서리"를 훔치는 사람들이 처벌받는 동안, "수십억원의 공사비를 빼돌린" 진짜 도둑들은 법적 처벌도 제대로 받지 않는 현실의 모순. 조성현 PD는 이를 통해 "약탈의 계급성"을 폭로한다.
붕괴 현장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려는 언론과 구경꾼들의 모습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약탈"이다. "타인의 불행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행위가 어떻게 물리적 약탈과 본질적으로 동일한지 조성현 PD는 예리하게 포착한다.
"폐허의 약탈" 현상은 단순한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병리"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사회적 증상"이다. "돈이 사람보다 위에 선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약탈의 대상이 되며, 재난조차 "기회"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빠진 철근"의 이미지들은 단순한 부실시공이 아니라 "이윤 극대화 알고리즘"의 결과물이다. 철근 한 개당 절약되는 비용 × 전체 개수 = 추가 이윤이라는 냉혹한 계산이 인명 경시로 직결되는 과정을 시각화한다.
제대로 된 구조 안전 검사 비용과 잠재적 인명 피해 보상비용을 "경제적으로 비교"하는 사고방식의 폭로가 핵심이다. "사고 확률이 낮으니 검사비가 더 비싸다"는 계산이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1990년대 "압축 성장" 패러다임이 낳은 "빨리빨리 문화"를 단순한 문화 현상이 아닌 "구조적 살인 시스템"으로 규정한다. "속도가 곧 경쟁력"이라는 믿음이 "안전은 사치"라는 인식으로 전환되는 과정의 추적이다.
또한 부실시공이 "개별 업체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체의 관행"이었음을 폭로한다. "다 이렇게 짓는데 우리만 비싸게 지을 수 없다"는 논리가 어떻게 "집단적 살인"을 정당화했는지 구조적으로 분석한다.
또한 "개인 책임론"으로 사회적 재난을 은폐하려는 시도들을 비판한다. "거기 왜 갔어?"라는 식의 "피해자 비난"이 어떻게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 선택의 문제로 둔갑시키는지 폭로한다.
조성현 PD는 "직접 재현의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대신 "간접 재현"의 방법들을 모색한다. 실제 붕괴 영상은 최소화하고, 증언자들의 몸짓과 표정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나는 신이다'에서 제기된 "선정성 논란"을 의식하여, 이번에는 "불필요한 자극"을 과감히 제거하고 "증언의 진정성"에만 집중한다. 이는 다큐멘터리가 "사회적 공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성현 PD의 철학을 보여준다.
붕괴 순간의 "굉음"을 재현하되, 그것을 "침묵"으로 마감하는 사운드 편집은 "죽음 후의 정적"을 강조한다. 소음에서 침묵으로의 전환은 "삶에서 죽음으로"의 이행을 청각적으로 구현한다.
인터뷰 중 증언자들이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하는 순간들을 편집으로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침묵의 보존"은 트라우마가 "언어화 불가능한 영역"에 속한다는 정신분석학적 통찰을 반영한다.
이 기획의 뛰어난 점은 바로 "감정과 이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객관적 자료"로 대우하면서도 그들의 "주관적 고통"을 존중한다. 이는 "냉정한 분석"과 "따뜻한 공감"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제3의 관점"을 제시한다.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구조"를 다루는 것이다. 조성현 PD는 삼풍백화점과 같은 참사가 "언제든 재발 가능하다"는 경고를 통해 "예방적 기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순살 자이' 논란 등의 최근 사건들을 경유한다. "기억의 현재화"를 통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출연자들이 "자발적 증언자"로 참여했으며, 그들의 목적은 "개인적 치유"가 아니라 "사회적 각성"일 것이다. 조성현 PD는 이들을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이자 "증언자"로 대우함으로써 그들의 "주체적 지위"를 인정한다.
수십번의 사회적 참사를 겪으며 "개인의 부주의"가 아닌 "시스템의 실패"로서 재난을 인식하는 관점이 확산되었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이러한 "구조적 재난 인식"의 선구적 사례로 재조명받는다.
한편 "생존자 서사"가 부상해오고 있다는 점도 주지의 사실이다. 미투 운동, 세월호 참사 등을 거치면서 "피해자에서 생존자로"의 정체성 전환이 사회적으로 확산되었다. '나는 생존자다'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면서도 선도하는 작품이다.
'나는 생존자다'의 삼풍백화점 편이 구축한 것은 "기억의 건축물"이다. 물리적 건물은 20초 만에 무너졌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으로 세운 "기억의 건축물"은 30년이 지나도 견고하다. 조성현 PD는 이 건축물을 "부실시공"이 아닌 "견고한 시공"으로 완성함으로써, 무너진 것들에 대한 "영원한 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이 기념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미완성성"에 있다. 조성현 PD는 "완결된 서사"를 거부하고 "열린 질문"으로 마무리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지속적 사유"를 요구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영화 속이 아니라 "영화 밖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돈이 사람보다 위에 선 사회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죽인다." 삼풍백화점은 "사고"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살인"이었으며, 그 구조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작동 중이다.
"나는 생존자다"라는 제목 자체가 선언이다. "나는 자본주의가 죽이려 한 사람이지만 살아남았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내가 살아있는 한 이 구조적 살인을 증언하겠다"는 다짐이다. 나아가 에피소드의 말미에서는 '나'의 위치가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로 확장된다.
결국 '나는 생존자다'가 제시하는 것은 "기억의 윤리학"이다. 무너진 것들을 기억하는 일이 곧 "무너뜨리지 않는 일"의 시작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기억의 주체는 "전문가"가 아니라 "생존자"여야 한다는 인식. 이것이야말로 조성현 PD가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돈으로 쌓은 탑>이라는 두 에피소드, 120분에 걸쳐 구축한 "증언의 건축학"이며, 30년 전 무너진 건물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영속적인 "기억의 삼풍백화점"일 것이다.
은유로 고통을 담을 수 없다는 절망, 아리 애스터 <존슨 가족의 이상한 일> 심층 해석 (3) | 2025.08.20 |
---|---|
플랫폼 자본주의의 잔혹극, 김병우 <전지적 독자 시점> 심층해석 (4) | 2025.08.19 |
그 욕망의 복숭아, 루카 구아다니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심층해석 (4) | 2025.08.19 |
진실과 허구가 키스할 때, 루카 구아다니노 <프로타고니스트> 심층해석 (4) | 2025.08.19 |
사랑이 되어버린 인간의 변태, 루카 구아다니노 <아이 엠 러브> 심층해석 (2) | 2025.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