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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베르 라시(Olivier Laxe)의 2025년작 『시라트』(Sirat)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물질적'인 영상 언어를 통해 가장 '비물질적'인 영적 탐구를 수행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16mm 필름의 거친 입자감과 모로코 사하라 사막의 압도적 물리성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질료성은, 동시에 이슬람 신비주의 전통에서 말하는 '시라트 다리'—천국과 지옥을 잇는 "머리카락보다 얇고 검날보다 날카로운" 형이상학적 통로—의 추상성과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영화의 제목이 품고 있는 중층적 의미는 이미 라시의 의도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랍어로 '길' 또는 '도(道)'를 뜻하는 일상적 용법과, 최후의 심판날 모든 영혼이 건너야 하는 시험의 다리라는 종말론적 함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영화는 모로코 사막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주간 레이브 파티로 시작된다. 스피커들이 모래 속에서 엔진처럼 고동치는 오프닝 시퀀스는, 단순한 장르적 설정을 넘어선 존재론적 선언처럼 느껴진다. 루이스(세르지 로페스, Sergi López)와 아들 에스테반(브루노 누녜스, Bruno Núñez)이 실종된 딸 마르(Mar)를 찾아 이 혼돈의 공간을 헤매는 모습은, 단테의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지옥을 순례하는 화자를 연상시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건 라시가 테크노 음악을 단순한 배경음이 아닌 '영혼의 진동'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감독 자신이 밝힌 바와 같이, 하드 테크노의 "킥 비트에서 시작해 더욱 에테르적이고 밀교적인 소리로, 마치 우주의 최초 원음을 찾아가는 것처럼" 음향이 진화한다.
레이버들로 구성된 집단—제이드(자드 우키드, Jade Oukid), 스테프(스테파니아 가다, Stefania Gadda), 조시(조슈아 헨더슨, Joshua Henderson), 토닌(토닌 장비에, Tonin Janvier), 비기(리처드 벨라미, Richard Bellamy)—은 흥미롭게도 대부분 비전문 배우들로, 실제 레이버들이 '자신들의 버전'을 연기한다. 이들 중 일부가 신체적 장애를 갖고 있다는 설정은 우연이 아닐 텐데, 라시가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주변부적 존재들의 연대'라는 주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이드가 같은 스페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루이스에게 보여주는 연민은, 혈연을 넘어선 '언어적 친족성'의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라시가 선택한 16mm 필름(심지어 Super 16mm)이라는 매체는, 120만 달러라는 제한된 예산 하에서도 탁월한 미학적 효과를 창출한다. 거친 입자감이 만들어내는 '사이키델릭한 질감'은 사막의 열기와 먼지를 거의 물리적으로 전달하면서도, 동시에 1970년대 로드 무비의 장르적 전통을 소환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트럭 뒤편에 고정된 카메라가 포착하는 도로 시퀀스는 압권이다. 자갈들이 줄무늬로 번져나가다가 단일한 흰 선이 나타났다 점선으로 부서지는 순간은, 속도가 증가할수록 현실이 추상화되는 시각적 시학을 보여준다. 이는 아마도 스탠 브래키지(Stan Brakhage)의 실험 영화나 조던 벨슨(Jordan Belson)의 추상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순수 시각적 체험에 가까울 것이다.
영화 중반 무장한 군인들이 나타나 "국가가 전쟁 중"이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일견 뜬금없어 보이지만 라시의 세계관에서는 필연적 요소일 수도 있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세계의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는 진단은, 단순한 환경적 위기를 넘어선 '문명의 일몰' 진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묵시록적 시간성은 각 캐릭터들로 하여금 '지금-여기'의 강렬함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루이스의 절망적 탐색도, 레이버들의 무모한 여행도 모두 '마지막 시간'의 긴박감 속에서 수행되는 의례적 행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3막 구조는 대칭적이지 않은 시간 압축과 확장을 보여준다. 루이스가 레이버 집단을 따라 "모리타니아까지 남쪽으로 내려가는" 결정을 내린 이후, 며칠인지 몇 주인지 몇 달인지 모를 시간이 흘러간다는 설정은, 사막이라는 공간의 시간적 무한성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루이스의 낡은 미니밴이 거대한 트럭들 옆에서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묘사는, 개인적 고통이 집단적 광기 앞에서 갖는 상대적 보잘것없음을 시각화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보잘것없음' 자체가 일종의 숭고함을 획득한다는 역설도 내포한다고 여겨진다.
음향 디자이너 라이아 카사노바(Laia Casanova)의 작업은 이 영화에서 단순한 기술적 요소를 넘어선 존재론적 차원을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막의 '얕고 무한해 보이는' 소리들이 만들어내는 공허한 앰비언스는, 사막 자체를 하나의 '캐릭터'로 변모시킨다. 이는 특히 스페인어 원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객도 영화의 정서적 아크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캉딩 레이(Kangding Ray)의 스코어 역시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닌 '디에제틱한' 존재로 기능한다. 캐릭터들이 음악과 상호작용하는 방식—혹은 음악이 캐릭터들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표현주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뉘앙스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시가 추구하는 음향적 여행은 "테크노의 킥 비트에서 시작해 우주의 최초 원음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존 케이지의 『4분 33초』나 라 몬테 영의 드론 음악을 연상시키는 '소음과 침묵의 경계 해체' 실험일 수도 있다.
특히 전자 음악이 "우주에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기묘한 낯섦"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된다는 감독의 설명은, 인간의 기술적 창조물(전자음악)을 통해 오히려 인간성의 한계를 탐구한다는 역설적 접근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시는 현대 사회를 "지나치게 타나토포빅(thanatophobic)한 사회"로 진단한다. "우리는 죽음을 피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그의 관찰은, 이 영화가 단순한 가족 찾기 서사를 넘어선 '죽음과의 대면을 통한 삶의 강화' 프로젝트임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하는 존재(Sein-zum-Tode)' 개념이나, 쿠블러 로스의 죽음 수용 단계 이론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이 "삶과 더 강렬하고 명료하게 대화하기 위한 문"이라는 라시의 철학은, 결국 영화 전체를 일종의 '영화적 의례'로 만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youtube
『시라트』는 1970년대 로드 무비의 장르적 전통—특히 윌리엄 프리드킨의 『소서러』나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시리즈—을 계승하면서도 동시에 해체한다. 전통적 로드 무비가 '목적지 도달'이라는 서사적 동력에 의존한다면, 라시의 영화는 '여행 자체의 변형력'에 더 관심을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영적 탐구'라는 프레임이 자칫 서구 중심적 오리엔탈리즘의 또 다른 버전일 위험성도 없지 않다. 하지만 라시가 모로코에서의 오랜 작업 경험과 아랍어 구사 능력을 바탕으로, 단순한 이국적 배경이 아닌 '문화적 번역'의 차원에서 접근한다는 점은 그런 우려를 어느 정도 상쇄시키는 것이다.
결국 『시라트』는 라시라는 작가가 15년간의 칸 영화제 여정을 통해 도달한 성숙의 결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타협 없는 급진적 영화'를 경쟁 부문에서 선보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진정한 '시라트 다리' 횡단의 성공 사례가 아닐까 싶다.
사막에서 들려오는 테크노 비트는 결국 우리 각자의 심장박동과 동조되고, 그 순간 개별적 고통이 보편적 연민으로 승화되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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