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지즈 안사리(Aziz Ansari)의 <굿 포춘>(Good Fortune, 2025)은 제목부터가 행운의 약속과 배반을 동시에 담은 반어다. 프랭크 카프라(Frank Capra)의 <멋진 인생>(It's a Wonderful Life, 1946)을 21세기 긱 이코노미로 업데이트하려는 이 영화는, 안사리의 장편 감독 데뷔작이자 동시에 그가 2022년 빌 머레이(Bill Murray) 관련 논란으로 중단된 <비잉 모털>(Being Mortal) 이후의 재기작이다. 97분이라는 압축된 러닝타임 안에, 바디 스왑 코미디, 계급 비평, 낭만적 코미디, 그리고 노동조합 운동까지 욕심 낸 결과는 진정성과 설교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가 연기하는 무능한 천사 가브리엘(Gabriel)은 <빌 앤 테드의 모험>(Bill & Ted's Excellent Adventure, 1989)의 순진무구함을 되찾으려는 시도이지만, 동시에 할리우드 특권층이 가난을 '관찰'하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으로 읽힐 여지가 있다.[1][2][3][4][5][6][7]
주인공의 이름 '아르즈(Arj)'는 명시적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아지즈(Aziz)의 애너그램이자 단축형으로 추정된다. 안사리 자신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타밀 무슬림 이민자 2세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이름은 자전적 투사이면서 동시에 에스닉 정체성의 희석을 암시한다. 'Aziz'는 아랍어로 '고귀한', '강한'을 의미하지만, 'Arj'는 의미를 잃은 음성학적 잔여물이다. 이는 이민자 후손이 미국화 과정에서 겪는 정체성의 타협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힌다.[8][6][1]
반면 벤처 캐피탈리스트 '제프(Jeff)'는 제프 베조스(Jeff Bezos)에 대한 명백한 오마주이다. 세스 로건(Seth Rogen)이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냉탕 치료(cold plunging)에 집착하고, 샤먼을 고용해 아야와스카(ayahuasca) 여행을 계획하며, 실리콘밸리 '웰니스 자본주의'의 풍자적 재현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공격적으로 악마적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문제의 일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악의 평범성'을 체현한다.[3][5][6][1]
키아누 리브스의 가브리엘은 "문자 운전을 하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하급 천사다. 이는 현대 도시의 미시적 재난을 다루는 일종의 '천사계 긱 워커'다. 그는 "더 큰 책임과 더 큰 날개"를 갈망하지만, 상사인 마사(Martha, 산드라 오 Sandra Oh 연기) 로부터 승진을 거부당한다.[9][5][6][1]
이 설정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송』(Der Process, 1925)이나 『성』(Das Schloss, 1926)을 연상시킨다. 카프카의 주인공들은 불가해한 관료제 앞에서 무력하다. 가브리엘도 마찬가지 - 천국조차 KPI(Key Performance Indicator)와 승진 사다리로 운영되는 기업 문화다. 이는 막스 베버(Max Weber)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 1905)에서 논한 근대 합리화의 '철창(iron cage)'을 천국으로 확장한다.
리브스는 인터뷰에서 밝힌다: "가브리엘은 선한 의도를 가졌지만 서툴다. 그는 규칙을 따르려 하지만 결과는 항상 잘못된다". 이는 리브스 자신의 공적 이미지 - '할리우드의 가장 착한 남자' - 를 메타적으로 활용한다. 그가 존 윅(John Wick)처럼 폭력적 효율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타코와 "치킨 너기(chicken nuggies)"에 감탄하는 순진함을 보여주는 것은 반(反)액션 히어로의 실험이다.[6][10]
아르즈와 제프의 몸을 바꾸는 설정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왕자와 거지』(The Prince and the Pauper, 1881)를 직접 참조한다. 또한 80년대 할리우드 코미디 - 특히 존 랜디스(John Landis)의 <트레이딩 플레이스>(Trading Places, 1983), 페니 마샬(Penny Marshall)의 <빅>(Big, 1988), 그리고 브라이언 길버트(Brian Gilbert)의 <부자되기>(Vice Versa, 1988) - 의 계보를 잇는다.[5]
하지만 <굿 포춘>은 80년대 코미디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트레이딩 플레이스>에서 두 주인공은 결국 공모하여 악당 듀크 형제를 무너뜨리고 부를 얻는다 - 개인의 승리. 반면 <굿 포춘>에서 아르즈는 제프의 삶을 즐기다가 결국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마지막에 "하드웨어 헤븐(Hardware Heaven, 홈디포/로우스 같은 대형 철물점 체인)의 모든 직원을 돕기 위해 노조를 결성하려" 한다. 이는 개인주의적 해결에서 집단적 저항으로의 전환이다.[10]
코멘터리 트랙(Commentary Track)의 평론가는 지적한다: "안사리는 <파크스 앤 레크리에이션>(Parks and Recreation) 출연 배우가 계급 격차에 대한 해결책을 가진 척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부의 일말이라도 얻으려면 잘못된 수호천사의 개입이 필요할 정도로 나쁘다".[6]
아르즈는 "차 안에서 잔다". 이는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밀레니얼 세대의 주거 불안정을 압축한다. 미국에서 'van life' 또는 'car camping'은 때로 로맨틱하게 포장되지만(인스타그램의 #vanlife 해시태그), 실제로는 주거비용 상승으로 인한 강제된 노마디즘이다.[3][6]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구별짓기』(La Distinction, 1979) 개념을 빌리자면, 차는 계급의 아비투스(habitus)를 체화하는 공간이다. 중산층은 차를 이동 수단으로, 상류층은 사치품으로, 하류층은 주거지로 사용한다. 아르즈의 차는 가정의 불가능성을 상징한다 - 그는 집이 없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
케케 팔머(Keke Palmer)가 연기하는 엘레나(Elena)는 "하드웨어 헤븐의 직원이자 노조 결성을 시도하는 인물"이다. 라이엇(Riot)의 평론은 칭찬한다: "그녀와 안사리의 씬은 달콤하고 <마스터 오브 넌>(Master of None)의 느낌을 되살린다".[11][5][10]
하지만 동시에 엘레나는 '사랑하는 여자'보다 '노조 활동가'로서 우선순위가 주어진다. 스콧 멘델슨(Scott Mendelson)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굿 포춘>은 엘레나의 인격을 존중하여, 아르즈와의 관계보다 직장 노조화 투쟁을 우선시한다". 이는 베크델 테스트(Bechdel Test)의 계급판 - 여성 캐릭터가 남성 주인공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프로젝트를 갖는다.[5]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토큰주의(tokenism)로 읽힐 위험도 있다. 안사리는 페미니즘 논란(2018년 #MeToo 운동 당시 데이트 중 성적 압박 폭로) 을 겪은 후, 여성 캐릭터에 '능동성'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을 구원하려는가? 아니면 진정으로 계급과 젠더의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탐구하려는가?[12]
촬영감독 아담 뉴포트-베라(Adam Newport-Berra)는 LA의 실제 거리, 식당, 모텔을 포착한다. 이타칸(The Ithacan)의 평론은 칭찬한다: "시네마토그래피와 조명 부서가 초과근무하여 모든 샷에 날카로운 대비를 전달했고, 캐릭터들이 실체를 결여했음에도 관객의 참여를 유지했다. 비주얼이 영화의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4][5]
하지만 동시에 비판한다: "세트 디자인은 높은 품질을 보여주었다. LA 전역의 레스토랑들은 각자 고유한 분위기를 가지며, 도시의 끊임없는 문화적 혼합을 세부적으로 보여준다. 가브리엘과 제프가 바디 스왑 후 수행해야 하는 더러운 일들은 정말로 그렇게 느껴진다 - 더럽고, 최저 생존으로 살아가는 강렬함으로 가득하다. 주방은 붐비고, 모텔은 곰팡이 나고 낡았다".[4]
이는 켄 로치(Ken Loach)의 사회적 리얼리즘을 연상시킨다. 로치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2016)도 복지 시스템의 관료적 폭력을 LA가 아닌 영국 뉴캐슬에서 포착했다. <굿 포춘>은 LA - 할리우드의 본거지 - 에서 바로 그 할리우드가 무시하는 노동자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간의 아이러니를 만든다.
음악은 카터 버웰(Carter Burwell)이 담당한다. 버웰은 코엔 형제(Coen Brothers)의 단골 작곡가로, <파고>(Fargo, 1996),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7), <트루 그릿>(True Grit, 2010) 등의 스코어로 유명하다. 코엔 형제의 작품들은 종종 블랙 코미디와 실존적 공허를 결합한다.[5]
<굿 포춘>에서 버웰의 음악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능하는지는 리뷰들에서 명시되지 않지만, 그의 스타일 - 미니멀리즘과 절제된 감정 - 을 고려할 때, 안사리가 영화를 "너무 감상적으로 만들지 않으려" 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카프라의 <멋진 인생>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클라이맥스로 유명하지만, <굿 포춘>은 그런 카타르시스를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3][5]
가장 일관된 비판은 영화가 후반부에 설교적이 된다는 것이다. 선브레이크(The Sunbreak)는 지적한다: "영화의 결함은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나타난다. 경쾌한 코미디로서는 거의 완벽하다. 하지만 안사리가 계급 분리와 긱 이코노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강조하려 할 때마다, 설교적이고 강제적으로 느껴진다. 거의 끝에, 한 캐릭터가 이 과정을 통해 배운 것에 대해 열정적인 연설을 하려 하지만, 그 장면은 영화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관객이 확실히 알도록 덧붙여진 것처럼 느껴진다".[4][3]
이타칸도 동의한다: "아르즈에게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그의 더 부드러운 순간들은 그가 코미디를 시도하는 순간들과 정확히 똑같이 들린다. 작성된 대화와 연출 선택이 캐릭터들의 범위를 제한하여, 영화가 비진정하고 무균적으로 느껴지게 한다".[4]
이는 안사리의 스탠드업 코미디 배경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스탠드업은 관객에게 직접 말하는 형식이며, 종종 명시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내러티브 영화에서 같은 방식을 사용하면 'Show, Don't tell'의 원칙을 위반한다. 로베르 브레송(Robert Bresson)은 『시네마토그래프에 관한 단상』에서 경고했다: "영화는 증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IMDB 리뷰는 신랄하게 지적한다: "백만장자가 만든 가난에 관한 영화. 너무나 귀엽다. 부의 재분배에 관한 설교적 엔딩을 가진 귀엽고 재밌는 영화, 집합적으로 거의 5억 달러의 순자산을 가진 배우들이 창조하고 출연했다: 키아누 3억 8천만, 로건 8천만, 안사리 2천 5백만, 케케 팔머가 7백만으로 '가장 가난하다'".[13]
이 비판은 정당하되, 동시에 환원주의적이다. 그렇다면 부유한 예술가는 결코 빈곤을 다룰 수 없는가?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은 백만장자였지만 <모던 타임스>(Modern Times, 1936)에서 대공황 시대 노동자의 고통을 묘사했다. 켄 로치는 중산층 출신이지만 평생 노동계급을 영화화했다.
하지만 동시에 재현의 정치학(politics of representation)은 중요하다. 스파이크 리(Spike Lee)가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 1989)를 만들 때, 그는 브루클린 베드-스타이(Bed-Stuy) 출신으로서 그 동네의 인종적 긴장을 '내부자' 시선으로 포착했다. 안사리는 긱 워커가 아니다 - 그는 넷플릭스 스타다. 그의 시선은 필연적으로 관광객의 시선이다.
여러 리뷰가 <멋진 인생>을 언급한다. 카프라의 영화는 은행가 조지 베일리(James Stewart 연기)가 자살을 시도하자, 천사 클래런스(Henry Travers 연기)가 그에게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지 보여준다. 조지는 깨닫는다 - 그는 가난했지만, 많은 사람들을 도왔고, 그의 존재가 의미 있었다.[6][5]
<굿 포춘>은 이 구조를 역전시킨다. 가브리엘은 아르즈에게 부자가 되는 것이 실제로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하지만 아르즈는 부자로 사는 것이 정말 좋다는 것을 발견한다. 돈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한다 - 주거, 식량, 의료, 안정. 카프라의 이상주의("돈보다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2025년 긱 이코노미에서 작동하지 않는다.[10]
하지만 동시에 <굿 포춘>은 카프라의 결론으로 회귀한다 - 공동체적 연대. 아르즈는 결국 노조 결성을 돕기로 한다. 이는 <멋진 인생>의 마지막 장면 - 온 마을이 조지를 구하기 위해 돈을 모으는 - 을 에코한다. 하지만 2025년 버전은 자선이 아닌 집단적 권력 구축이다.[10]
마침내 <굿 포춘>이 증명하는 것은 선한 의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브리엘은 선하지만 무능하고, 아르즈는 공감력 있지만 무력하며, 제프는 호의적이지만 특권적이다. 안사리 자신도 마찬가지 - 그는 불평등을 비판하지만, 그 시스템의 수혜자다. 영화는 이 모순을 해결하지 않는다. 단지 웃음 뒤에 숨긴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 적어도 관객이 극장을 나서며 "치킨 너기"를 먹으며 잠시나마 긱 워커의 삶을 생각한다면. 가브리엘은 날개를 잃었지만, 아르즈는 희망을 얻었다. 그 희망이 환상인지 실재인지는 - 카프라처럼 - 안사리도 답하지 않는다. 단지 LA의 해질녘 오렌지빛 속으로 카메라가 팬하며, 엔딩 크레딧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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