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우샤오시엔(侯孝賢)의 <비정성시(悲情城市)>는 1989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작품이지만, 진정한 의미는 그 트로피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잠겨 있다. 이 영화는 타이완 영화사에서 최초로 2·28 사건과 백색공포 시대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 기억의 고고학적 발굴이자 집단적 트라우마의 시각적 번역이라 할 수 있다. 1945년 일본 항복 직후부터 1949년 장제스(蔣介石)의 타이베이 임시정부 수립까지, 린(林) 가문의 4형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는 표면적으로는 가족사극이되, 그 이면에는 정체성의 분열과 언어적 소외라는 실존적 질문들이 층층이 쌓여 있다.[1][2][3][4][5]
영화에서 가장 급진적인 장치는 량자오웨이(梁朝偉)가 연기한 린원칭(林文清)의 농아 설정이다. 이는 당초 광둥어권 배우인 량자오웨이가 대만어나 일본어를 구사할 수 없었던 실용적 제약에서 출발했지만, 허우샤오시엔은 이 '결함'을 영화사적 혁신으로 전환시킨다. 타이완 영화 최초로 후시 녹음 대신 동시녹음(direct sound recording)을 고집한 감독의 선택은, 원칭의 실어증을 단순한 캐릭터 설정이 아닌 시대의 알레고리로 승격시켰다.[6][7][8]
원칭은 여덟 살에 나무에서 떨어져 청각과 언어를 잃었다는 설정인데, 이는 타이완 화가 천팅스(陳庭詩)의 실제 경험을 참조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 내에서 이 상실은 개인사를 초월하여, 역사적 격변 속에서 목소리를 박탈당한 타이완 민중 전체의 은유로 작동한다. 원칭은 사진관을 운영하며 카메라 렌즈 너머로 세계를 관찰하지만 발화할 수 없고, 그의 의사소통은 붓글씨와 일기, 편지 등 문자 텍스트로만 가능하다. 영화는 그의 손글씨를 흑백 인터타이틀로 삽입하는데, 이는 무성영화 시대의 문법을 소환하면서 동시에 검열과 억압의 시대에 글쓰기만이 유일한 증언의 형식이었음을 암시한다.[9][8][4][10][6]
허우샤오시엔은 인터뷰에서 "원칭의 농아 설정은 천재스(陳儀) 정부의 잔혹하고 무감각한 태도를 해석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밝혔다. 국민당 정권 하에서 타이완인들은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없었고, 정체성을 표명할 수조차 없었다. 원칭의 침묵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강제된 실어증이며, 이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모티프가 된다.[7][6][9]
허우샤오시엔의 시각 언어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롱테이크(long take)와 고정 쇼트(static shot)의 결합이다. 촬영감독 천화이언(陳懷恩)은 자연광 중심의 미니멀한 조명과 망원렌즈를 활용하여, 인물들을 "멀고 차갑게(遠く冷ややかに)" 포착한다. 클로즈업을 극도로 절제하고 인물들을 중경이나 원경에 배치함으로써, 감독은 의도적으로 감상성으로부터의 거리두기를 실천한다.[11][12][13]
이러한 미학은 중국 작가 선충원(沈從文)의 영향에서 비롯된다. 허우샤오시엔은 선충원의 자서전을 읽고 "햇볕 아래에서 재현되는 슬픔과 공포"라는 관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선충원의 문체가 지닌 객관적이고 절제된 서술 방식, 비극적 사건조차 담담하게 기록하는 태도는 허우샤오시엔의 영상 문법으로 직접 전이된다. <비정성시>의 롱테이크는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윤리적 태도의 표명이다—역사의 비극을 선정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관객에게 스스로 사유할 시공간을 부여하는 것이다.[14][15][16][17][18]
천화이언의 촬영은 중국 산수화(山水畫)의 구도 원리를 응용한다. 프레임 내부에 다층적 공간을 배치하고, 전경-중경-원경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도록 설계함으로써, 단일 쇼트 안에 복수의 서사 레이어를 중첩시킨다. 예컨대 실내 장면에서 문틀이나 창문이 프레임 내 프레임으로 작동하며, 카메라는 종종 방 밖이나 복도에서 내부를 엿보는 듯한 시점을 채택한다. 이는 백색공포 시대의 감시와 불신의 분위기를 시각화하는 동시에, 관객을 역사적 사건의 목격자이자 침입자로 위치시킨다.[19][14]
조명 역시 철저히 자연광에 의존하는데, 실내 장면에서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확산광이 공간을 부드럽게 채운다. 그림자의 활용은 불확실성과 공포를 암시하며, 빛과 어둠의 교차는 도덕적·정서적 양가성을 드러낸다. 특히 금과석(金瓜石) 광부병원이나 지우펀(九份)의 좁은 골목길에서 촬영된 장면들은, 광산업의 쇠락과 함께 침잠하는 시대의 우울을 물질적 텍스처로 번역한다.[20][4][19]
영화의 주요 촬영지인 지우펀과 금과석은 일제강점기 금광 채굴로 번성했다가 1960년대 자원 고갈로 급격히 몰락한 공간이다. 허우샤오시엔이 이 폐허화된 장소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공간 자체가 역사의 증인이자 서사적 텍스트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린 가문의 사업장인 "샤오상하이(小上海)" 술집과 "황진주자(黃金酒家)" 요정, 그리고 인근의 "조선루(朝鮮樓)" 등은 실제 지우펀의 수직 골목길 슈치루(豎崎路)에 위치한다.[4][20]
금과석 광부병원은 영화에서 종합병원으로 등장하는데, 이 건물은 1994년 철거되어 지금은 광장과 기단부만 남아 있다. 다화(大華) 기차역은 광업 쇠퇴 후 무인역이 되었으며, 영화에서는 원칭이 열차 정지 후 폭행당할 뻔한 장면의 배경이 된다. 이처럼 로케이션 그 자체가 역사적 레이어를 품고 있으며, 카메라는 그 레이어들을 고고학적으로 탐사한다.[20]
흥미롭게도 <비정성시> 개봉 이후 지우펀은 관광지로 재탄생했다. 영화가 폐허를 기록하려 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기록 행위가 공간을 다시 활성화시킨 것이다. 이는 메타영화적 차원에서 볼 때, 시네마가 현실에 개입하고 재구성하는 힘을 증명하는 사례다.[20]
<비정성시>의 사운드스케이프는 그 자체로 복잡한 정치적 지형도다. 영화 속 인물들은 대만어, 일본어, 표준중국어, 상하이 방언을 섞어 사용하며, 각 언어는 권력관계와 계급, 정체성을 코드화한다. 린 가문의 장남 린원슝(林文雄)은 대만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이는 그가 일제시대를 체험한 세대임을 나타낸다. 반면 차남 린원룽(林文龍)은 군의관으로 루손(呂宋)에 징집되어 실종되고, 삼남 린원량(林文良)은 상하이에서 일본군 통역으로 일했다는 이유로 "한간(漢奸, 매국노)" 혐의를 받는다.[21][10][5][4]
특히 원량의 비극은 언어가 어떻게 정치적 무기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상하이방 조폭들은 원량의 과거를 빌미로 국민당 헌병대에 밀고하고, 그는 투옥되어 고문당한 후 정신이상자가 되어 돌아온다. 영화는 이 장면을 직접 재현하지 않고 결과만을 보여줌으로써, 폭력의 가시성을 거부하고 관객에게 상상의 공백을 강제한다.[4]
음악 역시 중요한 서사 장치다. 작곡가 리쓰야(立石雅也)가 만든 악보는 일본 전통악기 샤쿠하치(尺八, 대나무 피리)를 활용하여 멜랑콜리하고 내성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히로미(寬美)의 테마는 플루트 솔로로 연주되며, 이는 그녀의 순수함과 동시에 시대적 고립을 암시한다. 음악이 두 번째로 등장하는 순간은 히로미의 오빠 히노에(寬榮)가 2·28 사건 이후 국민당 관리들에게 구타당한 직후인데, 이때 피리 소리는 폭력의 여운을 시적으로 연장시킨다.[22][5]
허우샤오시엔의 서사 구조는 선형적 플롯을 거부하고 중국 고전 시의 구성 원리를 차용한다. 영화는 대규모 역사적 사건(2·28 사건, 백색공포)을 전경화하지 않고, 그것이 개인과 가족에게 미치는 파문과 여파에 집중한다. 마치 두보(杜甫)의 시가 안사의 난을 직접 서술하지 않고 한 가족의 이산을 통해 전쟁을 암시하듯이, <비정성시>는 린 가문의 연회, 출산, 죽음, 결혼이라는 일상적 의례들 속에 역사의 폭력을 침전시킨다.[3][23][24][1][14]
영화의 시퀀스는 종종 공명과 반복의 리듬으로 연결된다. 영화는 옥음방송(玉音放送,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 선언)과 동시에 린 가문의 아기 탄생 장면으로 시작한다. 생명의 시작과 제국의 종말이 교차편집되며, 이는 종말이 곧 시작이라는 역설을 제시한다. 후반부에서 원칭과 히로미의 결혼과 아들 아첸(阿謙)의 탄생 역시 린원슝의 장례식 직후 배치되는데, 이러한 구성은 생사의 순환이라는 유교적·도교적 세계관을 반영한다.[14][4]
또한 영화는 빈번하게 공경(空鏡, empty shot)을 삽입한다. 산, 바다, 구름, 기차, 나무 등 인물 없는 풍경 쇼트는 서사의 흐름을 중단시키지만, 동시에 시간의 경과와 자연의 무심함을 암시한다. 선충원의 문학에서 자연 묘사가 인간 사건의 무상함을 대비시키듯, 허우샤오시엔의 공경은 역사의 비극조차 자연의 순환 앞에서는 일시적 파동에 불과함을 상기시킨다.[25][16][17]
허우샤오시엔과 오즈 야스지로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주제다. 두 감독 모두 로우앵글 고정 쇼트, 롱테이크, 일상의 의례화, 감정의 절제라는 공통 요소를 공유한다. 그러나 데이비드 보드웰이 오즈의 스타일을 "비합리적 스타일(unreasonable style)"이라 명명했듯이, 허우샤오시엔의 방법론 역시 고전적 서사 규범을 일탈한다.[26][27][28][29]
그러나 결정적 차이도 존재한다. 오즈는 전후 일본의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소시민의 체념과 수용을 그렸으며, 그의 세계에는 폭력, 전쟁, 광기가 부재한다. 반면 허우샤오시엔은 개인과 시대를 결속시키며, 역사의 폭력이 가정 내부로 침투하는 양상을 포착한다. 오즈의 로우앵글이 다다미 위 시선의 겸손함을 표현한다면, 허우샤오시엔의 미들 쇼트는 관찰자의 윤리적 거리를 설정한다.[28][29][30]
일본 평론가들은 허우샤오시엔이 오즈의 형식을 차용하되 "개인과 시대를 연결하는 독자적 시공간 감각"을 창출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단순한 영향 관계가 아니라 동아시아 영화 미학의 대화적 진화로 읽혀야 한다.[30]
원칭이 사진관 주인이라는 설정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세계를 프레임 안에 포획하는 자이지만 동시에 발화할 수 없는 자다. 사진술과 영화술은 모두 시간을 정지시키고 기억을 물질화하는 메커니즘인데, 원칭의 농아 상태는 이미지가 언어를 대체하는 조건을 알레고리화한다. 영화 속에서 사진들—히로미의 초상, 가족 사진, 친구들의 기념사진—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소멸 직전의 존재를 증거하는 유령적 매체다.[4]
허우샤오시엔은 영화 자체를 거대한 기억의 사진첩으로 구성한다. 각 시퀀스는 앨범의 페이지처럼 독립적이면서도 전체 내러티브에 기여한다. 그리고 관객은 원칭처럼 침묵 속에서 이미지를 응시하도록 강제된다. 이는 시네마가 본질적으로 시각적 매체임을 재천명하는 동시에, 언어 중심적 서사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표명한다.
린 가문 4형제의 이름은 모두 문(文)자 돌림을 따른다—원슝(文雄), 원룽(文龍), 원량(文良), 원칭(文清). 문(文)은 문명, 문화, 문자를 의미하는데, 이는 린 가문이 지식인 계층에 속하거나 최소한 교양을 지향하는 가문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네 형제 모두 문(文)의 힘으로는 역사의 폭력을 막을 수 없다—원룽은 실종되고, 원량은 정신을 잃으며, 원슝은 살해당하고, 원칭은 투옥된다. 이는 계몽과 이성에 대한 냉소적 반론이자, 근대성의 약속이 식민/탈식민 공간에서 어떻게 좌절되는지를 보여준다.[4]
히로미(寬美)와 그녀의 오빠 히노에(寬榮)의 이름 역시 의미심장하다. 관(寬)자는 관대함, 너그러움을 뜻하지만, 두 인물 모두 시대의 폭압 앞에 희생된다. 히노에는 좌익 지식인 그룹을 이끌다 산중에서 국민당군에게 소탕당하고, 히로미는 남편 원칭의 투옥 소식을 듣고도 도피하지 않기로 결단한다. 이들의 이름이 지닌 윤리적 함의는 현실의 비정(悲情)과 비극적으로 대비된다.[4]
원칭의 의사소통 수단인 붓글씨는 영화 전체의 미학적 텍스처를 규정한다. 그의 일기와 편지는 인터타이틀로 삽입되며, 이는 무성영화 시대의 관습을 소환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검열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양식에 대한 메타적 성찰이다. 백색공포 시기 타이완에서 글쓰기는 위험한 행위였고, 일기와 편지는 증거물로 압수되어 사형 판결의 근거가 되곤 했다.[8][10][31]
영화 속에서 편지 낭독은 부재하는 목소리를 환기시킨다. 실종된 원룽의 편지, 산중에 은신한 히노에의 전언, 투옥된 원칭의 메시지—이들은 모두 육성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문자로 매개된다. 이는 부재와 상실의 시학을 구축하며, 관객은 텍스트를 읽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서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10]
<비정성시>에는 여러 차례 연회 장면이 등장한다. 린 가문의 출산 축하연, 술집 개업식, 지식인들의 모임 등은 모두 식탁을 중심으로 한 수평적 공간 구성을 특징으로 한다. 카메라는 식탁 한쪽 끝에 위치하여 참석자들을 파노라마처럼 포착하며, 대화는 다중적 화자들 사이에서 분산된다. 이는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쇼트-리버스 쇼트 관습을 거부하고, 집단 내부의 권력 관계와 정서적 긴장을 공간적으로 드러낸다.[19][10][4]
그러나 연회는 점차 불안과 공포의 장으로 변모한다. 2·28 사건 이후 지식인들의 모임은 체포와 실종의 전조가 되며, 식탁은 더 이상 연대의 공간이 아니라 감시와 밀고의 잠재적 장소가 된다. 영화 후반부 원칭과 히로미의 결혼식은 소박하고 조용한데, 이는 축제의 불가능성을 암시한다—공동체는 이미 해체되었고, 개인은 고립되었으며, 미래는 불투명하다.[4]
<비정성시>는 컬러 영화이지만, 색채는 극도로 절제되어 거의 세피아 톤에 가까운 팔레트를 유지한다. 이는 기술적으로는 자연광 활용과 필름 현상 과정에서의 선택이지만, 미학적으로는 역사적 거리감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색채의 탈각은 과거를 현재로부터 분리시키며, 관객에게 이것이 "이미 지나간" 사건임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이는 기억의 퇴색을 시각화한다—개인의 기억은 시간 속에서 색을 잃고 윤곽만 남긴다.[19]
그러나 이따금 강렬한 색채가 출현한다. 붉은 신부복, 초록 나뭇잎, 푸른 하늘—이러한 순간들은 생명력의 간헐적 분출로 읽힌다. 특히 지우펀과 금과석의 풍경 쇼트에서 자연의 녹색은 인간사의 비극과 대조되며, 자연의 지속성과 인간 역사의 덧없음을 병치시킨다.
<비정성시>는 타이완 정체성 담론에서 분수령적 텍스트다. 영화가 제기하는 근본 질문은 "타이완인이란 무엇인가?"다. 린 가문은 일본 제국의 신민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중화민국" 국민이 되지만,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다. 원량은 일본군 통역이었다는 이유로 "한간"으로 낙인찍히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원슝은 대만어를 쓰지만 일본어도 유창하며, 이는 그의 정체성이 혼종적이고 분열적임을 의미한다.[32][1][6][4]
영화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결 불가능성 자체를 정직하게 제시한다. 원칭의 일기에는 "당신이 어떤 신념을 품고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신뢰하지 않고 심지어 간첩으로 의심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한 고아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 "고아(孤兒)"라는 은유는 탈식민 주체의 실존적 조건을 정확히 포착한다—타이완인은 중국과 일본, 어느 쪽의 자식도 아닌 역사적 고아인 것이다.[6]
히로미(辛樹芬 분)는 영화에서 가장 능동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금과석 광부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자립적이고, 원칭에게 먼저 다가가며, 오빠를 피신시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 그녀의 선택—원칭과 함께 남아 체포를 기다리는 결정—은 논쟁적이다. 이를 수동적 희생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연대와 사랑의 능동적 선택으로 볼 것인가?[4]
허우샤오시엔은 히로미를 멜로드라마적 희생양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으며, 그녀의 결단은 대사가 아닌 행동과 침묵으로 표현된다. 이는 감독의 일관된 전략—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제시하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히로미는 시대의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을 통해 주체성을 확보하는 인물이다.[4]
<비정성시>는 고문, 처형, 학살 장면을 직접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 결과와 여파만을 보여준다—투옥 후 정신이상이 된 원량, 총에 맞아 죽은 원슝의 시체, 투옥 소식을 전하는 편지. 이러한 생략의 미학은 두 가지 효과를 낳는다. 첫째, 폭력을 선정적으로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윤리적 책임을 다한다. 둘째,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더 강렬한 정서적 충격을 유발한다.[1][4]
영화학자들은 이를 "트라우마의 재현 불가능성"과 연결시킨다. 백색공포는 생존자들조차 증언하기 꺼리는 사건이었고, 공식 기록은 왜곡되거나 삭제되었다. 허우샤오시엔은 이 재현 불가능성을 재현 전략으로 전환한다—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더 강력하게 증언하는 것이다.[33][34]
1989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비정성시>를 본 한 평론가는 "오미잡진(복합적 감정)"을 느꼈다고 고백한다—"신비의 베일을 벗긴 맹동, 서사시를 만난 환희, 그리고 '그냥 이대로?'라는 가벼운 한숨". 이 "그냥 이대로?"는 일종의 프로토-밈이다. 허우샤오시엔의 영화는 관습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지 않기에, 관객은 종종 완결되지 않은 감정을 안고 극장을 나선다. 이는 버그가 아니라 피처다—역사는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으며, 트라우마는 해소되지 않는다.[10]
현대 시네필들 사이에서 <비정성시>는 "보는 게 아니라 체험하는" 영화로 통한다. 첫 관람에서는 플롯을 따라가기 어렵고, 두 번째 관람에서 비로소 레이어와 텍스처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는 허우샤오시엔이 의도한 바다—영화는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읽히고 재독되는 텍스트여야 한다.
<비정성시>는 결말을 제공하지 않는다. 원칭은 체포되고, 히로미는 남겨지며, 아들 아첸은 아버지 없이 자랄 것이다. 영화는 이후를 보여주지 않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백색공포는 1987년 계엄령 해제까지 지속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침묵 속에 사라졌다. 허우샤오시엔이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계엄령 말기에서 해제 직후라는 역사적 틈새 덕분이었다. 영화 자체가 역사적 투쟁의 산물인 셈이다.[34][4]
33년이 지난 지금, <비정성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텍스트로 기능한다. 홍콩의 시위대가 "시대혁명"을 외칠 때, 타이완 청년들이 해바라기 운동을 전개할 때, 이 영화는 참조점이 된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을 맞춘다는 마크 트웨인의 경구처럼, <비정성시>가 담은 질문들—정체성, 식민성, 폭력, 기억—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허우샤오시엔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나는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 살았던 사람들을 복원하려 한다". <비정성시>는 거대 서사가 아니라 미시사의 집적이며, 영웅담이 아니라 패배자들의 엘레지다. 그리고 그 엘레지는 센티멘탈하지 않고, 냉정하고, 때로는 견딜 수 없이 아름답다. 마치 해질 무렵 지우펀 골목길에 드리운 빛처럼—사라지기 직전,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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