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첫 선을 보인 아리 애스터(Ari Aster)의 《에딩턴(Eddington)》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동시대를 겨냥한 화살이다. 2020년 5월 뉴멕시코의 가상 소도시 에딩턴—감독의 고향이기도 한 이 땅에서, 그는 팬데믹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법자'가 어떻게 공동체의 마지막 결속을 해체시키는지를 목격한다. 하지만 진짜 무법자는 코로나19가 아니다. 진짜 악역은 혼란 속에서 조용히 자리하는 SolidGoldMagikarp라는 데이터센터 기업이고, 이들을 가리며 정치적 혼란상을 안기는 디지털 안개는 마스크 논쟁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왜 지금, 이 영화인가? 현재 우리는 팬데믹의 물리적 위협에서는 벗어났지만, 그 시기에 가속화된 '현실의 파편화'라는 더 깊은 병리 안에서 살고 있다. 아리 애스터는 《유전》에서 가족의, 《미드소마》에서 공동체의,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개인의 해체를 그려왔다. 이제 《에딩턴》에서 그는 국가 자체의 해체를 다룬다. 더 정확히는,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민주주의의 기반인 '공유된 현실'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지를 폭로한다.
조 크로스(Joe Cross, 호아킨 피닉스)는 에딩턴의 보안관이다. 그의 이름부터가 십자가(Cross)—고통과 구원의 이중 상징을 품고 있다. 그는 마스크를 거부하고, 음모론을 차에 붙이고 다니며, 결국 시장 선거에 출마한다. 하지만 그의 반항은 진정한 저항이 아니라, 큰 그림에서 보면 SolidGoldMagikarp의 계획에 정확히 부합하는 조작된 반항이다.
테드 가르시아 시장(Ted Garcia, 페드로 파스칼)은 조의 정치적 대척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조의 아내 루이즈(Louise, 엠마 스톤)와 복잡한 과거사를 공유한다. 이 삼각관계는 개인적 원한이 정치적 갈등으로, 다시 폭력으로 확산되는 고전적 서부극의 구조를 따른다.
돈(Dawn, 디어드리 오코넬)은 조의 장모로, 유튜브 음모론의 열성 신봉자다. 그녀는 프린트한 음모론 자료를 집안 곳곳에 배치하며, 디지털 독을 물리적 공간으로 전이시키는 아날로그 바이러스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오스틴 버틀러가 연기하는 정체불명의 인플루언서는 온라인에서 사람들을 선동하는 디지털 전도사로 등장한다. 하지만 애스터는 이 캐릭터를 전체적인 플롯에서 의도적으로 과소서술함으로써, 진짜 권력이 개별 인물이 아닌 시스템 자체에 있음을 암시한다.
다리우스 콘지(Darius Khondji)의 촬영은 뉴멕시코의 광활함과 소도시의 답답함을 동시에 포착한다. 오프닝에서 노숙자 로지(Lodge, 클리프턴 콜린스 주니어)가 걸어가는 텅 빈 도로는 서부극의 클래식한 이미지지만, 카메라가 팬하며 드러내는 것은 SolidGoldMagikarp 데이터센터 건설 예정지 표지판이다. 이 한 장면으로 애스터는 전체 영화의 핵심을 요약한다: 표면의 서부극, 심층의 테크놀로지 스릴러.
영화의 마지막 이미지는 완공된 데이터센터다. 오프닝의 빈 땅과 엔딩의 콘크리트 덩어리 사이에, 한 공동체의 완전한 붕괴가 있다. 이는 애스터 영화의 일관된 패턴이다: 《유전》의 인형집과 트리하우스, 《미드소마》의 의식 완성,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수중 심판. 시작과 끝이 메아리치며, 운명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애스터와 콘지는 "코로나 서부극(covid western)"이라는 장르적 모순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전통적인 서부극의 황금빛 매직아워와 실내의 형광등 조명이 충돌하며, 아날로그 과거와 디지털 현재의 갈등을 색채로 번역한다.
특히 테드의 바에서 벌어지는 마스크 논쟁 장면에서, 유리창을 통한 조명의 굴절은 같은 현실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들을 물리적으로 시각화한다. 조는 유리 바깥에서, 테드는 안에서 같은 상황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SolidGoldMagikarp라는 기업명은 단순한 허구적 브랜드가 아니다. '솔리드 골드(Solid Gold)'는 확실함과 가치를, '매지카프(Magikarp)'는 포켓몬의 최약체 캐릭터('잉어킹'의 영어 버전)를 의미한다. 하지만 매지카프(잉어킹)는 진화하면 강력한 '갸라도스'가 된다. 즉, 겉보기에 무해한 데이터 센터 건립이 궁극적으로는 사회 통제의 괴물로 변모할 것임을 예언하는 명명법이다.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이름은 GPT 모델의 토크나이제이션 버그를 연상시킨다. 'SolidGoldMagikarp'는 실제로 특정 AI 모델에서 예측 불가능한 출력을 야기하는 문제적 토큰으로 알려져 있다. 애스터가 이를 의도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알고리즘의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주제와 기묘하게 일치한다.
루이즈가 만드는 "기이한 인형들"은 《유전》의 미니어처, 《미드소마》의 조각상과 연결되는 시각적 모티프다. 애스터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형들이 "통제와 조작의 은유"라고 밝혔다. 루이즈의 인형들은 온라인에서 판매되는데, 후에 조 크로스가 자신의 후배에게 사도록 해왔다는 것이 암시된다. 이는 조작이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해 만연한 현대적 양상의 단편을 압축한다.
애스터는 《에딩턴》을 "현대적 서부극"으로 규정하지만, 실제로는 서부극의 모든 관습을 비틀어놓는다. 전통적 서부극에서 보안관은 질서의 수호자이지만, 조 크로스는 오히려 무질서의 촉매다. 그는 존 웨인이 승인할 만한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의 행동은 웨인적 영웅주의와 정반대다.
이는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나 폴 토마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반서부극"의 계보를 잇는다. 하지만 애스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부의 개척 신화 자체를 디지털 식민주의의 새로운 형태로 재해석한다.
영화의 정치적 측면은 시드니 폴락의 《콘도르의 3일》이나 앨런 파쿨라의 《올 더 프레지던트 맨》 같은 1970년대 정치 스릴러의 DNA를 공유한다. 하지만 70년대 영화들이 정부 내부의 음모를 다뤘다면, 《에딩턴》은 민간 기업의 은밀한 조작을 폭로한다. 워터게이트 시대의 아날로그 감시에서 빅테크 시대의 알고리즘 조작으로의 진화.
두 사람의 대조는 미국사회를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포퓰리즘 vs 테크노크라시'의 갈등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직관적, 감정적, 반엘리트적 권위를 표상하는 조 크로스라는 인물과 상대적으로 합리적, 절차적, 제도적 권위를 표상하는 테드 가르시아.
조 크로스라는 캐릭터는 애스터의 가장 복잡한 창조물 중 하나다. 그는 동시에 피해자이자 가해자, 영웅이자 악역이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그의 일관된 코미디적 타이밍을 활용해—이 캐릭터의 비극적 우스꽝스러움을 완벽하게 포착한다.
"마스크 때문에 당신 말을 이해할 수 없어요"라는 조의 대사는 표면적으로는 물리적 불편함을 표현하지만, 더 깊은 층위에서는 소통 불가능성에 대한 은유다. 2020년 이후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마스크'를 쓰고 있고, 그 때문에 진정한 대화가 불가능해졌다는 애스터의 진단일 것이다.
페드로 파스칼이 연기하는 테드는 겉보기에는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리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합리성" 역시 SolidGoldMagikarp의 큰 그림 안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조작이다. 애스터는 선의의 권력도 결국 시스템의 일부라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시의회가 모이는 곳은 어디든 시청이야"라는 테드의 대사는 민주주의의 형식화와 권력의 자의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는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능력을 보여주며, 이는 현대 정치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디어드리 오코넬이 연기하는 돈은 현대적 카산드라다. 그녀의 음모론 중 일부는 실제로 맞을 수 있지만,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정보의 홍수 속에서 그 진실성을 판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스터는 그녀를 통해 정보 과잉 시대의 인식론적 딜레마를 형상화한다.
"그들이 2019년에 그 단어를 썼다고!"라는 돈의 외침은 동시대 음모론자들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소급적 패턴 인식의 오류—을 완벽하게 포착한다.
노숙자 로지가 텅 빈 도로를 걸어가는 오프닝 시퀀스는 묵시록 영화의 고전적 이미지를 차용한다. 하지만 "LATE MAY, 2020"이라는 자막이 나오는 순간, 관객은 소급적 공포를 경험한다. 우리는 이미 그 시기를 살아냈고, 그 기억이 영화적 허구와 겹치면서 묘한 불편함을 야기한다.
로지의 중얼거림은 처음에는 광인의 헛소리로 들리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의 말들이 예언적 진실임이 드러난다. 그는 마을의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는 현대적 예언자다.
테드의 바 앞에서 벌어지는 마스크 논쟁 장면은 영화의 핵심 주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같은 상황(로지가 가게 앞을 막고 있는 것)을 두고 조와 테드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로지는 밖에 있으니까 문제없다. 테드가 과민반응하고 있다"는 조의 관점과 "로지는 위험하고 공격적이다.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테드의 해석의 충돌.
아리 애스터는 이 장면을 통해 "객관적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질문하며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상황을 시각화한다.
첫 번째 백인 노인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마트 진입을 막히자, 조는 직감적으로 그를 도와준다. 이 순간 조의 행동은 진정한 공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천식 환자일 수도 있는 노인의 곤경을 이해하고, 권위에 대한 본능적 반감으로 점원들을 제지한다.
하지만 두 번째 백인 남성 노인이 같은 상황에서 제지당하고 돌아갈 때, 마트 안 사람들이 점원에게 박수를 보내는 장면에서 조의 태도 변화가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카메라는 이 박수 소리를 들으며 말없이 지켜보는 조의 표정을 포착한다. 이 순간 조는 자신이 소수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의 신념이 사회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깨닫는다.
마트 씬에서는 특히 카메라워크와 편집도 주목할 만하다. 첫 번째 노인을 도울 때는 조의 시점에서 촬영되어 관객의 공감을 유도한다. 하지만 두 번째 장면에서는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조가 고립된 존재임을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현재 우리가 목격하는 일상의 극단적 정치화 현상을 5년 전에 정확히 예견한 것처럼 보인다. 마스크에서 시작된 갈등이 백신, 선거, 기후변화, AI까지 확장되며, 모든 개인적 선택이 정치적 표명이 되는 사회. 마트 장면은 바로 그런 사회의 축소판을 그린다.
백인 남성 노인의 페이스북 포스트는 조의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노인이 조를 "진정한 애국자"로 추켜세우며 감사 인사를 올리자, 그 글에 호의적 반응이 쇄도한다. 이는 현대 소셜미디어의 에코 체임버 효과를 완벽하게 재현한다—조는 자신의 행동이 실제보다 훨씬 더 큰 지지를 받는다고 착각하게 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바이럴 순간"이 조의 시장 출마 결심으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조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이 그 포스트에 반응하고, 조는 이를 전체 여론으로 착각한다. 아스터는 여기서 소셜미디어가 어떻게 현실 인식을 왜곡시키는지를 정교하게 묘사한다.
테드 가르시아의 펀딩 캠페인 파티에서 벌어지는 케이티 페리의 "Firework" 시퀀스는 《에딩턴》 전체의 정치적 DNA를 압축한 마스터피스다. 아스터는 처음에 제이지와 알리샤 키스의 "Empire State of Mind"를 사용하려 했지만, "Firework"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2010년 오바마 시대의 희망적 팝송이 2020년의 맥락에서는 잔혹한 아이러니가 되기 때문이다.
조가 음악을 끄려는 시도는 상징적 권위에 대한 외로운 저항이다. 하지만 테드에게 뺨을 맞고 굴욕적으로 쫓겨나는 순간, 관객은 전통적 권위(보안관)와 새로운 권력(테크 지원을 받는 정치인) 사이의 세력 전환을 목격한다. 페드로 파스칼은 처음에 호아킨을 때리기를 주저했지만, 호아킨이 "진짜로 때리"라고 독려한 테이크가 최종본에 들어갔다고 아리 애스터는 말한 바 있다. 이 개인 간 물리적 폭력은 집단 간의 정치적 폭력의 전조가 된다.
테드의 세련된 영상광고와 경쾌한 펀딩 파티는 실리콘밸리의 무한자본이 지역 정치를 장악하는 과정을 시각화적으로 은유한다. 반면 조의 캠페인은 페이스북 셀피 영상과 허름한 음식점 무대에서의 원색적 비방으로 이루어진다. 그가 아내 루이즈가 어릴 적 테드에게 강간당했다는 거짓말을 퍼뜨리는 장면은, 포스트-트루스 정치의 핵심 메커니즘—진실이 아니라 감정적 타당성이 정치적 설득력을 갖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아리 애스터의 진정한 비판 의식이 드러난다. 조의 거짓말은 더 큰 진실을 은폐하는 도구다. 루이즈를 강간한 것은 테드가 아니라 그녀의 친아버지이자 조의 전임 보안관이었다. 조는 이로써 가부장제 권력구조의 공모자가 되며, 진짜 가해자를 보호하고 무고한 타자(테드)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조가 노숙자 로지와 테드를 살해한 후, 이를 BLM(Black Lives Matter) 시위대의 소행으로 조작하려는 시퀀스는 현대 미국 정치의 가장 어두운 측면을 폭로한다. 조는 루크 그라임스(Luke Grimes)가 연기하는 백인 부하와 마이클 워드(Michael Ward)의 흑인 부하를 이용해 완전범죄가 될 프레임을 설계해 간다.
특히 주목할 점은 "E"라는 특이한 필적이 살인현장에 남겨지고, 이것이 조의 사무실 화이트보드에서 발견되는 과정이다. 이 디테일은 범죄수사물의 클리셰를 활용하면서도, 동시에 디지털 시대의 증거조작 가능성을 암시한다. 필적은 조작할 수 있지만, 무의식적 습관을 담은 흔적까지는 감출 수 없다는 것에서다.
라코타 경관과의 관할권 다툼은 단순한 코미디 장면이 아니라, 식민지 경계선의 정치학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다. 시체가 발견된 곳이 에딩턴과 보호구역의 경계선 위라는 설정은, 미국의 모든 갈등이 결국 원주민 토지 강탈이라는 원죄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암시한다.
라코타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반면 조가 착용하지 않는다는 시각적 대조는, 과학적 합리성 vs 반지성주의의 갈등을 인종 갈등과 겹쳐놓는다. 라코타는 조의 범죄를 추적하는 정의로운 추격자로 그려지지만, 동시에 타자화된 존재로서 백인 관객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게 연출된다. 이는 아리 애스터가 관객의 무의식적 편견을 시험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마이클 워드가 연기하는 조의 흑인 부하가 피부색만으로 용의선상에 오른 후 도망치는 시퀀스는, 미국 형사사법제도의 구조적 인종차별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는 실제로는 무고하지만, "흑인 경찰관"이라는 이중적 위치 때문에 어느 쪽에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백인 동료들(조의 편)은 그를 희생양으로 버리고, 흑인 공동체는 그를 시스템의 공모자로 규탄한다. 그의 도주는 물리적 도망이 아니라 정체성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는 절망적 시도다.
한편 조의 아내 루이즈(엠마 스톤)가 오스틴 버틀러의 온라인 인플루언서 캐릭터에게 현혹되는 과정은, 소셜미디어 시대의 마인드 컨트롤을 섬뜩하게 그려낸다. 엠마 스톤은 칸에서 "알고리즘이 나를 바꿨다"고 고백했는데, 이는 배역 준비를 위해 실제로 음모론 콘텐츠를 검색한 후 추천 알고리즘의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루이즈의 변화는 점진적이다. 처음에는 남편 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던 그녀가, 점차 오스틴 버틀러의 '계시'에 심취하게 된다. 이는 큐어넌(QAnon)과 같은 음모론 커뮤니티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포섭되는지를 정확히 재현한다. 특히 임신이라는 취약한 상태에서 그녀가 더욱 조작에 취약해진다는 설정은, 생식권 논쟁과 여성의 신체 통제권이라는 동시대 이슈와 연결해볼 만하다.
영화 후반부의 폭력적 클라이맥스는 다소 예측 가능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애스터는 《유전》이나 《미드소마》에서 보여준 "숙명적 폭력"의 연출법을 더욱 정교화한다. 모든 갈등의 선이 한 점으로 수렴하며, 개인적 원한이 집단적 파국으로 확산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폭력이 SolidGoldMagikarp의 이익에 정확히 부합한다는 것이다. 마을이 혼란에 빠질수록,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저항은 약해진다. 폭력은 우발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적으로 계산된 결과일 테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프라이빗 제트를 타고 온 무장 집단은 《에딩턴》의 가장 논란적인 요소다. 표면적으로는 ANTIFA 테러리스트로 묘사되지만, 아스터는 의도적으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다.
아리 애스터는 TIME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무의식의 투사로 심리를 분석하는 로샤 테스트처럼 기능하도록 의도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관객이 어떤 해석을 택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정치적 편견과 두려움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에딩턴》은 코로나19를 소재로 한 메이저 영화 중 하나다. 애스터는 여전히 진행 중인 트라우마를 영화화하는 것의 윤리적 문제를 의식하고 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적 재현"과 "풍자적 과장" 사이를 위태롭게 줄타기한다. 관객은 스크린 위의 2020년과 자신이 경험한 2020년 사이의 간극에서 불편한 쾌감을 느낀다. 이는 장-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의 세 번째 단계—시뮬라크르가 현실을 대체하는 순간—와 정확히 일치한다.
2025년 현재, 《에딩턴》의 예언들은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X(구 트위터) 인수, 메타의 정치적 개입, TikTok을 둘러한 국가 안보 논란 등은 모두 영화가 경고한 "테크 기업의 정치적 조작"과 상응한다.
특히 "SolidGoldMagikarp"라는 기업명이 암시하는 AI와 데이터 수집의 결합은, ChatGPT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이 인간의 사고방식까지 바꾸고 있는 현재 상황과 겹친다. 우리는 부지불식 간에 이미 알고리즘이 큐레이션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는 끝났지만, 그 시기에 형성된 사회적 균열은 여전하다. 마스크 논쟁은 백신 음모론으로, 다시 정치적 양극화로 이어졌다. 《에딩턴》은 이런 연쇄 반응의 문화적 무의식을 정확히 진단한다.
애스터는 인터뷰에서 "우리의 마음이 식민화되었다"고 표현했다. 물리적 식민주의가 끝난 시대에, 인지적 식민주의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배급한 의견을 소비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를 일이다.
조가 뇌에 도끼를 맞아 실어증에 빠지면서도 시장직을 차지하는 결말은, 현대 민주주의의 끔찍한 패러디다. 그는 물리적으로는 식물인간 상태지만, 정치적으로는 승리자가 된다. 이는 트럼프 현상에 대한 가장 신랄한 풍자로 읽힌다—인지능력이 손상된 지도자가 대중의 분노를 등에 업고 권력을 차지하는 현실.
장모 돈(Deirdre O'Connell)이 조 대신 연설하는 장면에서, 휠체어에 앉은 조의 모습과 유튜브(처럼 보이는) 플랫폼에서 임신한 엠마 스톤이 오스틴 버틀러 뒤에 앉아있는 장면의 중층적 구도는, 테크 자본주의 권력의 대리행사라는 정치적 주제를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에딩턴》의 마지막 이미지는 완공된 데이터센터다. 마을의 모든 갈등과 폭력이 끝나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만이 남는다. 이 이미지는 동시에 종말과 시작을 의미한다. 구세계의 종말이자, 신세계의 시작.
아리 애스터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미 프로그래밍된 알고리즘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가? 우리의 분노와 두려움, 사랑과 증오까지도 누군가의 의도와 설계에 따른 대상은 아닌가?
《에딩턴》이 제시하는 답은 절망적이다. 하지만 그 절망의 정직함이야말로 변화의 첫 번째 조건일지도 모른다. 데이터센터는 이미 우리 주변에 완공되어 있다. 이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뿐이다.
적어도 애스터는 우리가 맨 정신으로 그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리고 때로는 맨 정신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서야 우리는 정말로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SolidGoldMagikarp는 포켓몬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보이지 않는 지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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