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하마구치 류스케(濱口竜介)의 《우연과 상상(偶然と想像, Wheel of Fortune and Fantasy)》은 121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세 개의 독립된 단편을 배치한 삼면경(Triptych) 구조의 영화다. 이 세 편의 이야기들은 단순히 나열된 것이 아니라, 마치 바흐의 인벤션처럼 주제와 변주의 관계를 정교하게 형성하는 듯하다.
메이코(古川琴音/후루카와 코토네)와 츠구미(Hyunri)가 택시에서 나누는 41분간의 대화로 시작되는 첫 번째 에피소드는, 여성들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탐구한다. 츠구미가 "인생 최고의 밤"을 보냈다며 흥분하여 털어놓는 연애담을, 메이코는 복잡한 표정으로 듣는다.
택시라는 밀폐된 이동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 대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자동차 공간과 연결되는 하마구치의 이동하는 고해성사실 모티프를 연상시킨다. 여기서는 운전기사가 제3자로 존재하며, 두 여성의 대화를 무언의 증인으로 듣는다.
메이코의 선택이 이 에피소드의 핵심이다. 그녀는 친구의 행복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정보를 알고 있지만, 결국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을 택하는 듯하다. 이는 확실한 파괴보다 불확실한 희망을 택하는 윤리적 결단으로 해석될 수 있다.
대학 교수 세가와(渋川清彦/시부카와 키요히코)와 그의 제자 나오(森郁月/모리 카즈키)의 관계를 다루는 두 번째 에피소드는, 권력과 욕망의 복잡한 역학을 탐구한다. 나오가 사사키(甲斐翔真/카이 쇼마)를 이용해 세가와를 유혹하려는 계획과 그 예상치 못한 결과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Door Wide Open"이라는 제목은 물리적으로는 열려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닫혀있는 관계의 역설을 보여준다. 세가와의 사무실 문이 항상 열려있다는 규칙은 투명성 뒤에 숨겨진 은밀한 욕망을 드러내는 장치로 보인다.
나츠코(占部房子/우라베 후사코)가 20년 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만나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시간과 기억의 치유력에 대한 하마구치의 서정적인 탐구로 여겨진다. 두 여성이 과거를 재연하며 현재를 치유하는 과정은, 연극적 카타르시스가 현실에 적용되는 한 예로 볼 수 있다.
"노조미(희망)"라는 이름을 20년 만에 기억해내는 순간은,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마구치는 여기서 시간이 지워주는 것과 시간이 선물하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하마구치와 촬영감독 이이오카 사치코(飯岡幸子)는 극도로 일상적인 공간들—택시, 카페, 대학 사무실—을 연극적 무대로 전환한다. 이는 에릭 로메르의 영향을 보여주는 동시에, 하마구치만의 공간적 상상력을 드러낸다.
택시의 후방석에서 벌어지는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동하는 사적 공간에서의 고백의 정치학을 탐구한다. 메이코와 츠구미 사이의 물리적 거리—각각 창가에 앉아 있는—는 감정적 거리감과 상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가와의 사무실은 "항상 열린 문"이라는 규칙으로 인해 공적이면서 사적인 공간의 이중성을 갖는다. 이 투명성의 역설은 권력 관계의 은밀한 작동 방식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세 에피소드 모두 인공 조명을 최소화하고 자연광의 변화에 의존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택시 장면에서 도쿄 거리의 네온사인이 만드는 불규칙한 조명 변화는, 메이코의 내적 갈등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대학 사무실의 오후 햇살은 나오와 세가와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기울어져 간다. 이런 시간의 물리적 흐름은 감정의 변화와 동조하는 듯하다.
하마구치는 대화 사이의 침묵을 도시의 환경음으로 채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택시의 엔진음과 도쿄 거리의 소음은, 두 여성의 내적 갈등을 청각적으로 지원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기차역의 안내방송과 발걸음 소리는, 시간의 흐름과 만남과 헤어짐의 리듬을 만들어내는 듯하다. 하마구치는 인위적 음악 없이도 이런 환경음만으로 감정적인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마구치는 구키 슈조(九鬼周造)의 『우연성의 문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구키의 "우연이란 존재(有)에 파고드는 무 (実有に喰い入る無) "라는 정의는, 이 영화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연은 현실에 존재하지만, 상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하마구치의 구분은, 영화라는 매체가 현실(우연)과 허구(상상) 사이의 경계면에서 작동하는 예술이라는 그의 믿음과 연결된다.
하마구치는 에릭 로메르의 『나무와 시장과 문화회관/또는 일곱 가지 우연』과 『파리의 랑데부』에서 직접적 영감을 받았다고 인정한다. 특히 일상적 대화 속에 숨겨진 철학적 함의를 포착하는 방식은 로메르적 전통의 동아시아적 변용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로메르가 지적 게임의 즐거움을 추구했다면, 하마구치는 감정적 치유의 가능성에 더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이는 서구적 개인주의와 동아시아적 관계 중심 사고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비평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홍상수와의 유사성은 표면적인 것으로 보인다. 홍상수의 우연이 알코올과 욕망의 즉물성에 기반한다면, 하마구치의 우연은 언어와 성찰의 정신성에 기반하는 듯하다.
특히 대화의 기능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홍상수의 인물들이 말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면, 하마구치의 인물들은 말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것처럼 보인다.
후루카와 코토네의 메이코는 친구의 행복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정보를 갖고 있지만, 결국 침묵을 선택한다. 이는 확실한 진실보다 불확실한 희망을 택하는 윤리적 결단으로 여겨질 수 있다.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을 믿을 수 있겠어?"라는 그녀의 질문은, 현실의 잔혹함과 환상의 필요성 사이의 영원한 딜레마를 압축하는 듯하다. 메이코는 현실주의자이면서 동시에 이상주의자라는 모순적 존재로 그려진다.
모리 카즈키의 나오는 계획적으로 우연을 조작하려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의 치밀한 계획은 예상치 못한 진정한 우연에 의해 완전히 전복된다.
세가와와의 대화에서 나오가 보여주는 지적 성숙함과 감정적 취약함의 대비는, 현대 젊은 여성의 복잡한 정체성을 포착하는 듯하다. 그녀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라는 이중적 위치에 놓여 있다.
우라베 후사코의 나츠코는 시간의 치유력을 체현하는 인물이다. 20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면서, 그녀는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지혜로 변환시킨 듯하다.
"노조미"라는 이름을 기억해내는 순간에서, 나츠코는 망각의 고통과 기억의 축복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시간이 가져다주는 선물에 대한 하마구치의 아름다운 표현으로 볼 수 있다.
메이코(芽衣子)의 이름은 '새싹 옷을 입은 아이(새싹(芽) + 옷(衣) + 아이(子))'를 뜻하며, 그녀가 친구의 행복을 파괴할 수 있는 진실을 감싸고, 더 나은 선택을 향해 '성장'하는 과정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 이름은 그녀의 내적 성숙과 보호자 역할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즈아키(和明)의 이름은 '조화로운 밝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밝고 매력적인 성격은 두 여성 사이에 예상치 못한 불화를 일으킨다. 이름이 약속하는 조화와 현실이 빚어내는 갈등 사이의 대조가 중요한 아이러니다.
츠구미(つぐみ)라는 이름은 '개똥지빠귀'를 뜻하는 동시에, 발음상 '입을 다물다(噤む, 입을 다물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새와 같지만, 정작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중요한 진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침묵의 아이러니를 지닌다.
세가와(瀬川)라는 성은 '여울강'을 의미하며, 흐르는 여울을 붙잡 듯 글을 쓰는 교수의 역할과 함께 권력이라는 위험한 여울에 선 인물의 복잡성을 암시하는 듯하다. '열린 문'이라는 투명성 아래에서도, 감정의 급류는 통제 불가능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나오(奈緒)는 '연결하는 끈'이라는 뜻을 지녀, 관계를 조작하려는 시도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녀의 치밀한 계획과 달리, 결국 진정한 연결은 계산이 아닌 솔직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사키(佐々木)라는 성은 '도움을 주는 나무/버팀목'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는 그가 나오의 계획에서 의도치 않게 도구로 사용되는 역할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순수한 의도를 가진 그가 타인의 욕망에 조작당하는 모습은 이름과 서사 사이의 미묘한 긴장을 만들어낸다.
나츠코(夏子)의 이름은 '여름 아이'를 의미한다. 20년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며 여름의 뜨거움이 원망이 아닌 용서의 온기로 전환된 듯, 그녀는 성숙한 온기를 체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츠코가 우연히 만나는 동창의 이름은 노조미(望美)이며, 이는 '희망'을 뜻하는 한자를 포함한다. 나츠코가 그녀를 다른 이름으로 착각하지만, 대화를 통해 본명을 기억해내는 순간, 두 사람의 삶에는 새로운 희망의 무늬가 새겨지는 듯하다.
택시라는 이동 공간에서 벌어지는 대화는, 하마구치의 대화 연출 능력의 정수를 보여준다. 메이코와 츠구미는 각각 창가에 앉아 서로를 직접 바라보지 않으면서 대화한다.
"인생 최고의 밤"을 보냈다는 츠구미의 흥분된 고백과, 그것이 자신의 전 연인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메이코의 복잡한 감정 사이의 긴장감이 지속된다.
택시 기사의 은밀한 존재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말없는 증인으로서, 두 여성의 사적 대화를 공적 공간에서 벌어지게 만드는 제3의 시선을 제공한다.
"항상 열린 문"이라는 규칙 아래에서 벌어지는 나오와 세가와의 대화는, 투명성과 은밀함의 역설을 구현한다. 물리적으로는 열려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닫혀있는 공간에서, 권력과 욕망의 복잡한 역학이 펼쳐진다.
나오의 계획—사사키를 위해 세가와를 유혹하려던—은 결국 실패한다. 나오가 세가와 교수에게 보내려던 녹음 파일을 잘못된 수신자에게 보내는 장면은, 하마구치가 탐구하는 "우연성"의 가장 잔혹한 예시다.
집에 돌아온 나오가 "세가와(瀬川)"라고 입력해야 할 이메일 주소를, 남편이 "사가와 급편(佐川急便)에서 메일이 왔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혼동하여 "사가와(佐川)"로 잘못 입력한 것이다. 단 한 글자의 차이가 두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20년 만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는 세 번째 에피소드는, 시간과 기억의 치유력에 대한 하마구치의 서정적인 탐구로 여겨진다. 나츠코와 고등학교 동창의 대화는, 과거를 재연함으로써 현재를 치유하는 과정인 것처럼 보인다.
"역할놀이"를 통해 20년 전의 미해결된 감정들을 현재의 성숙함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은, 연극적 카타르시스가 현실에 적용되는 한 예로 볼 수 있다. 이는 하마구치가 추구하는 예술의 치유적 기능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노조미"라는 이름을 기억해내는 마지막 순간은,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을 통해 인간관계의 신비를 포착하는 듯하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메이코가 아까 지나쳤던 건물로 돌아가 달라고 요청하는 순간은, 전체 영화의 구조적 DNA를 응축하는 듯하다. 이는 단순한 방향 전환이라기보다, 운명에 대한 능동적 개입의 첫 신호로 보인다. 택시의 U턴은 물리적으로는 같은 길이지만, 시간의 비가역성 때문에 결코 '같은' 경험일 수 없다. 이는 하마구치가 영화 전반에 걸쳐 탐구하는 '반복과 차이'의 철학적 명제를 첫 장면에서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나오가 세가와의 사무실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여는 행위는 택시의 U턴과 정확히 조응한다. '항상 열려있어야 하는 문'을 일시적으로 닫는 것은, 규칙에 대한 일탈이자 친밀감으로의 초대일 수 있다. 하지만 포르트노이의 불만 낭독이 끝난 후 문이 다시 열리는 순간, 그 공간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상태(열린 문)이지만, 감정적으로는 완전히 변화된 공간이 된 것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서로 반대 방향으로 타고 지나치는 두 여성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은유적 장치처럼 보인다. 나츠코가 아래로, 동창(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위로 이동하는 이 장면은, 과거로 돌아가려는 욕망과 미래로 나아가려는 의지의 시각적 대립을 보여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와 대화하기 시작하는 순간, 기계적 움직임이 인간적 의지에 의해 멈춰 선다. 이는 시간의 흐름을 인간의 감정이 압도하는 순간의 물리적 구현일 수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메이코, 츠구미, 택시 기사의 삼각 시선 구조가 중요하다. 츠구미는 메이코를 보며 이야기하고, 메이코는 창밖을 보며 듣고, 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두 사람을 관찰한다.
이런 비대칭적인 시선 구조는 정보의 불균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메이코만이 모든 정보를 알고 있지만, 시선 상으로는 가장 수동적인 위치에 있다는 아이러니가 연출되는 듯하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나오와 세가와의 시선 게임은 세대적, 성적 권력 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오가 포르트노이의 불만을 읽는 동안 세가와를 직시하지 않는 것은, 텍스트를 방패로 삼은 간접적인 유혹일 수 있다.
세가와가 "의자에서 몸을 움직이거나 목을 가다듬는" 미세한 반응들이 거대한 사건처럼 부각되는 것은, 억압된 욕망의 증폭 효과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두 여성이 마주보는 순간은,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는 시선의 힘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리적으로는 멀어지고 있지만 감정적으로는 가까워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카즈아키가 메이코를 포옹하는 순간은 강제적인 친밀감이 지닌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언어적 소통이 실패한 후의 물리적 강제로서, 남성적인 해결 방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메이코가 그 포옹에서 벗어나 달아나는 행위는, 과거의 익숙한 패턴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적인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몸의 거부를 통한 정신적인 해방의 표현일 수도 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나오와 세가와는 거의 신체 접촉을 하지 않는다. 포르트노이의 불만이라는 극도로 성적인 텍스트를 매개로 하면서도, 두 사람의 몸은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한다.
이런 물리적인 거리와 심리적인 근접의 대조는, 현대적인 유혹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준다. 직접적인 접촉 없이도 강렬한 성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언어의 힘을 입증하는 것이다.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두 여성이 손을 잡고 역할극을 하는 장면은, 가장 인위적인 상황에서 가장 진정한 감정이 교환되는 역설적인 순간이다. "가짜" 관계를 연기하면서 "진짜" 치유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노조미"라는 이름을 기억해내는 순간 손을 놓는 행위는, 기억의 회복과 함께 오는 놓아 보냄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하마구치 자신이 밝혔듯이, 이 작품은 코로나19로 인한 스케줄 혼란의 우발적 산물이었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동시에 촬영될 수밖에 없었던 제작상의 우연이, 우연을 주제로 한 영화를 탄생시킨 것이다.
이는 메타적 차원에서 영화의 주제를 실증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예측 불가능한 외부 상황(팬데믹)이 예술가의 계획을 뒤바꾸면서, 오히려 더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마구치의 "낭독하기(대본을 감정 없이 읽는)" 방법론이 이 작품에서 극한까지 실험되는 듯하다. 배우들의 자연스럽지만 연극적인 대사 전달은, 일상과 예술 사이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든다.
"현실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의도적 비현실성이, 역설적으로 더 깊은 현실적 진실에 도달하게 하는 듯하다. 이는 브레히트적 소외 효과의 하마구치적 변용으로 볼 수 있다.
세 개의 독립된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로 묶는 삼면경 구조는, 단편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참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확인과 도전"이라는 하마구치의 단편 제작 철학을 반영하는 듯하다. 기존 방법론의 확인(본읽기 기법의 정교화)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도전(우연이라는 서사적 소재)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작품이다.
하마구치의 "인위적" 대화는 의도된 미학적 선택일 수 있다. 그는 자연주의적 재현을 거부하고, 언어의 순수한 힘을 탐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상적 대화의 모방이 아니라 대화 자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이 그의 목적일 수 있다.
"지루함"은 깊은 몰입으로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집중력과 인내력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일시적 불편함은 불가피한 것일 수 있다. 하마구치는 즉석 만족 문화에 대한 의도적 저항을 수행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명시적 연결의 부재가 오히려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유도하는 듯하다. 세 옴니버스 형식의 에피소드는 표면적으로는 독립적이지만 주제적으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은밀한 구조는 하마구치의 정교한 연출력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다.
《우연과 상상》은 결국 선택에 대한 영화다. 메이코의 침묵, 나오의 계획, 나츠코의 기억—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 우연 앞에서 내리는 선택들로 볼 수 있다. 하마구치는 우연 자체보다는 우연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 더 관심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구키 슈조가 말한 "존재에 파고드는 무(実有に喰い入る無)"로서의 우연은, 우리에게 기존의 삶을 재검토할 기회를 제공하는 듯하다. 예상치 못한 만남, 계획하지 않았던 대화, 기억에서 되살아나는 이름—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하마구치의 세 여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운명의 바퀴를 멈추고 다시 돌린다. 메이코는 파괴 대신 보존을, 나오는 계산 대신 솔직함을, 나츠코는 망각 대신 기억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아름다우면서도 고통스러운 면모를 가진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121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에게 그것을 상기시키는 듯하다. 진정한 우연은 여전히 가능하고, 진정한 만남은 여전히 일어날 수 있으며, 진정한 대화는 여전히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그리고 그 모든 가능성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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